“늙지 않는 청춘의 도시.” 5·18기념재단 김준태 이사장은 광주를 그렇게 표현했다.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그가 썼던 시의 제목이다. 이 시는 1980년, 전남매일 6월 2일자 1면에 게재되었다. 신문이 발행되자마자 김 이사장의 시는 화제를 몰고 왔고 곧이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언론과 잡지에 각 나라말로 옮겨져 발표되었다.

김 이사장은 1980년 6월 2일 오전 10시 전남매일 문순태 부장에게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문 부장의 “시 한편 써주라”는 부탁에 그는 두 가지 이유로 그 제안을 승낙했다. “메시지와 선언.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썼고, 광주의 아픔을 선언하기 위해 시를 썼다.” 시를 신문에 싣고 그는 몸을 피해 이 곳 저 곳으로 도망 다녔다. 한 달여간 도망 다니다 결국 붙잡혔고, 그는 광주 보안대로 끌려가 보름동안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는 꽤 긴 시다(원문 150행). 때문에 당시 전남매일에는 20줄밖에 실리지 못했었다. 그렇게 긴 시를 김 이사장은 당시 “50분 만에 작성했다”고 했다. 150행이나 되는 긴 시를 어떻게 50분 만에 쓸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그는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니다”고 답했다. “당시 광주시민의 영령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이 시를 쓰게 만들었다. 5월의 영령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십자가를 진 것이다.”

총칼을 든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 역사를 되짚으며 1980년 5월은 좌절과 절망의 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5월을 “승리”라고 표현했다. “5월은 아름다웠다. 광주시민들은 너와 나를 나누지 않았다. 5월 속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나눔과 베풂을 통해 그들은 운명을 같이했다. 거기서 나는 거대한 기쁨과 환희를 느꼈다. 광주시민은 말 그대로 ‘운명공동체’이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헤겔의 말에 빗대어 김 이사장은 말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 한해서 역사는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젊은 사람들의 몫이다. 젊은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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