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8일 ‘서울대 법인화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국립대 법인화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이후 서울대 구성원은 물론 야당, 전국 국립대 구성원, 시민단체 등이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인화 문제에 대해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우리 대학에서도 지난달 28일 ‘국립대 법인화의 문제점과 대안 대토론회’가 열렸다. 지면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 박배균 교수(서울대 지리교육과)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김학한 씨가 발제한 내용을 묶어 적는다. //엮은이

▲ 박병주 교수, 박배균 교수, 장복동 교수, 정상엽 씨(왼쪽부터)가 법인화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절차 무시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 되어야
‘서울대 법인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시작한 박배균 교수는 서울대 본부가 법인화 추진의 필요성으로 제시한 ▲세계적 추세 ▲법인화를 통한 대학 체질 개선 ▲초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자율권 확보 ▲획기적 재정확충과 교육, 연구 역량 강화 ▲법인화 국립대학의 모델 대학 구현과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의 내용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법인화 추진론은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와 경쟁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 근거한 허구적 주장”이라며 “법인화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파괴, 대학 사회의 지식생태계 파괴, 대학 경쟁력의 하향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서울대 법인화의 구체적 문제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먼저 법인화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추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서울대는 국민의 것이므로 국민들이 서울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며 “국회가 날치기 통과했음은 물론 서울대 구성원의 의견수렴도 미미했다”고 말했다.
법인화가 대세라는 허구적인 전제가 깔려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의 이상 모델은 미국의 대학이다. 미국의 대학은 매우 강한 자유주의적 전통 속에서 사립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이 발전한 나라이다. 박 교수는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미국의 경험을 보편화·일반화 할 수는 없으며, 미국에서 조차도 고등교육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어 사립대학의 주립대학화가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성과주의의 팽배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가 파괴돼 대학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 교수는 “법인화는 아카데미즘 붕괴, 학문과 교육활동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경쟁보다 재원 확보를 위한 정치적 로비의 경쟁 강화, 학문과 지식의 대외 종속성 강화를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법인화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국립대는 사립대 위주의 고등교육 환경에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시장이 담당하지 못하는 기초연구와 순수학문의 토대를 제공과 이를 통한 응용학문의 발전은 국가 경쟁력 향상의 기초이다. 하지만 법인화는 고등교육에 대해 더 이상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부담비율을 살펴보면 0.6%로 OECD 국가 평균 1.1%에 못 미친다. 박 교수는 “이러한 수치 속에서 진행되는 법인화는 ‘네가 알아서 해라’ 식”이라며 “이는 곧 등록금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대학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라 말한다. 그는 “법인화로 인해 총장직선제가 폐지되면서 사장 임명과 비슷한 일이 서울대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총장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이번 카이스트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 교수는 “일부에서 각 학과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문제를 총장권한 강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법인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버리고 마는 문제가 많은 발상이다”고 밝혔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서울대 법인화법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법인화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고를 전환해 보다 민주적이고 열려있는 방식으로 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전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고등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정부의 획기적 재정지원 확대를 통해 고등교육과 학문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발표에 귀 기울이고 있다.

▲ 대학 공공성 강화 위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법인화 저지가 끝인가? 김학한 씨는 “법인화를 막는다고 했을 때 현재의 대학 체제는 완전하고 공공성이 담보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그렇지 않다”라며 “공공성에 입각한 대안들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설득을 이끌어야 제대로 대학이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씨가 보기에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핵심문제는 대학의 서열화이다. 독일, 그리스, 호주 등은 모든 대학이 국립대학이고, 덴마크, 뉴질랜드 등은 99.5%, 97.3%에 육박한다. OECD 국가 평균도 79%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22.7%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운데 박배균 교수가 말했듯 국가의 지원은 매우 적다. 이러한 대학 공공성의 빈곤함은 대학서열체제를 부른다. 더해 등록금 폭등, 비정규직 교원 비율 증가도 불러온다.

대학의 서열화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서열체제의 공고함은 입시위주의 교육과 초중등교육의 왜곡을 낳고, 사교육비의 폭발적 증가를 유발한다. 김 씨는 “대학이 서열화 되어있는 나라에서 고등학교가 평준화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며 “대학의 서열화가 초중등교육의 균등한 교육 제공 체제를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공성에 입각한 대학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영미식의 대학체제보다 유럽식의 체제가 모델이 되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국립대이고 대학 등록금이 무상 혹은 최소한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한 가격으로 책정된(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시위와 저항이 있는) 곳이 유럽이다. 이러한 공공성에 입각해 김 씨가 제시한 방안이 ‘국립대통합네트워크’이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모델은 서울대를 포함한 기존의 국립대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립대학이 협약체결을 통해 결합한 형태로 학생을 통합 선발해 통합 학위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정부는 이에 참여하는 대학에 재정적·행정적·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

학생 선발은 대입자격시험을 치러 전기 대학, 즉 국립대통합네트워크에 학생을 우선 선발한다. 나머지 대학은 후기 대학으로 편제해 국립대통합네트워크에 지원하지 않거나 대입자격시험에 낙제한 학생들이 지원하도록 한다. 전문대학의 경우 대입자격시험 혹은 고등학교 성적과 산업체 활동 경력 등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대입자격시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와 같은 형태로 치러진다. 김 씨는 “대입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학생이 직접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게 된다”라며 “프랑스의 경우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학생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지역에 있는 대학을 선택한다. 이는 곧 대학의 공공성과 평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학 운영의 경우에는 무상교육을 지향한다. 하지만 국가 재정의 수준을 고려해 현 단계에서 고교 등록금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전임교원 충원율을 100%에 도달하게 하고, 비정규직교수를 정규직화 하여 교수, 연구 활동의 안정성을 담보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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