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세계교육기행(이하 세교기) 관련 예산이 완전히 삭감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규모가 대폭 ‘축소’된 채로 다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기사가 떴다. 예산을 편성하는 본부에서 어떤 해프닝이 있었기에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결정이 전복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친구들과 세교기를 준비하고 기다렸던 나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마음이 없다. 결과적으로 선발 인원이 감축되었다는 점, 그리고 본부가 그 대안으로 내놓은 프로그램들이 세교기의 의도와 그것에 호응했던 학생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동결로 말미암은 대학의 재정적인 중압감이 세교기 폐지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예산 삭감이 대학의 전반적인 예산감축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내게서 동정심마저도 달아나게 했다. 왜 하필이면 세교기인가. 본부 측의 대답은 웃기다. 첫째는 대학평가지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생들이 국외로 나가서 쓸데없는 소비만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논의할 가치조차도 없다. 대학의 프로그램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학습 의욕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대학의 순위 다툼을 위해 편성된 프로그램이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부어도 이미 영혼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더욱이 배움과 학습은 강의실이 아닌 그 어떤 곳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교실에서만 배우고 공부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의 목적과 여행의 행선지를 수립하고 실천해본다면, 그것은 어떤 강의보다도 값진 가르침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단순히 학생들의 소모적인 놀이거리로 치부한 점은 대학교육을 대하는 본부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본부는 세교기 축소를 대신해 국제계절학교나 교환학생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에서는 세교기보다 학생의 자율성이 훨씬 축소된다. 대학 본부가 학생들의 자율성과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대학운영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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