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의 활동이 활발하였던 유럽이나 화산활동에 의해 지각 변동이 심했던 일본에는 크고 작은 자연호수가 많다. 영국에서는 호수지역 국립공원(Lake District National Park)이 있고 이러한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계관 시인인 워즈워즈(W. Wordsworth)가 주옥 같은 명시를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하였다.

우리처럼 자연호수가 없는 나라는 두 말할 것도 없지만 자연호수가 많은 나라에서도 대부분 저수지를 축조하고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물의 시공간적 공급 패턴과 인간활동의 물 수요구조 사이에는 엇박자가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강우는 장마철에 집중되지만 생육기간 전반에 걸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벼농사가 농업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저수지,보 등 저수시설을 잘 갖추는 것은 치세의 근본이 되어 왔다.

인간은 저수지를 운영하면서 ‘물 자체의 특성은 물론이고 쓰임새도 흐름’에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순환이고 이 순환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물이다. 그래서 물은 단순한 흐름의 물체라는 자원적 측면을 넘어 생명의 원리와 질서를 떠 받고 있는 근원적 시스템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두어져 있지만 흐름의 본성은 존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가치재로서 수자원의 총량적 확보에만 급급한 사이, 질적인 악화는 물론이고 환경의 콩팥으로서 본원적 기능은 무시된 오류를 범해 온 것이다. 물이 환경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기능을 거시적 차원에서 다원 또는 다기능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단편적 욕망에 집착하여 단순한 기능에 올인하므로서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전일적 역할이 무시되고 결국 그로 인한 환경적 재앙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오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경고’ 또는 ‘환경의 복수’라는 섬뜩한 표현도 인간의 오만함의 다름 아님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더 이상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 주고 학습케 하는 과정이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겸손함으로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하리라.

물을 담는 시설로서 저수지라 부를 수는 있지만 흐름, 그리고 순환의 그릇으로 자연환경의 주요 요소라는 통합적 관점에서는 호수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조성방식이 인위적이어서 정확하게 표시하면 인공호수로서 자연호수와 구별될 따름이다. 자연호수는 호수를 중심으로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는 흐름의 연결선상에 위치하여 물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위험요소를 완충·지체시키면서 집합적 수체(Water Body)가 주는 다양한 혜택을 인간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저수지는 호수 또는 보다 통합적으로는 호소로 불리우고 관리되어야 한다. 가장 낮은 곳을 쉼없이 흘러 가면서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을 살리고 있는 물의 저장고인 호수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공유재산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인공호수는 기본적으로 저수라는 기능 발휘를 위해 축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필요에 의해 관리할 수 밖에 없지만 환경속에 자리한 이상, 환경과의 조화와 시너지라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관리에 그쳐야 한다. 자연의 크나 큰 섭리 앞에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하찮은 가를 성찰한다면 역시 겸양이 미덕이다. 물을 다루면서 겸양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는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물의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오늘, 넓은 호수면을 보면서 겸양의 도를 키워야 겠다는 각오가 더욱 절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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