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무대에서 다진 감동연기…세상 꼬집는 희곡 작업도 꾸준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어느 빌딩의 지하에 극단 ‘필통’이 있다. 이곳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여러 젊은이들과 함께 앉아있다. 이 극단의 대표인 그 남자는 단원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하나하나 묻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이자 한 극단의 대표인 그 남자, 희곡 작가이면서 직접 연기를 하는 연극인 그 남자 선욱현 동문(신문방송·86)을 만났다.


▲ 감동을 주기 위해 시작한 연극
18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울 대학로 무대에서 연극인의 삶을 살아온 선욱현 동문. 그가 발표한 작품만 40여 편이고, 수상 경력도 20여 회에 이른다. 그는 어떻게 광대(그는 광대라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했다)의 꿈을 꾸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선 동문은 영화감독과 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장손이었던 탓에 부모님의 바람대로 광주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고, 그래도 가장 영화와 관련이 있는 우리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다. 영화 󰡔미션󰡕(1986)을 보고난 후 느낀 감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 그. 영화를 배우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 그는 동아리 ‘전대극회’에 들어가 ‘대강당대 연극학과’ 생활로 연극인의 삶을 시작한다.
대강당대 연극학과라는 말은 당시 전대극회 학생들을 지칭하는 말 중 하나였다. 심지어 교수들은 출석부에 있는 ‘선욱현’이라는 이름 대신 ‘딴따라’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연극에 빠져있었고, 열심히 했다. 선 동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래도 ‘네가 원하는 길을 가라’고 말해준 교수님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세 극단 거치며 다져진 18년 연기 생활
1992년 졸업 후 선 동문은 ‘영화아카데미’에 지원한다. 국비로 운영되는 영화교육기관이었던 영화아카데미는 학비를 내지 않고, 선발인원도 12명이었던 탓에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아쉽게 고배를 마신 선 동문은 이후 우연히 연극연출가 김시라 선생을 만나 1993년 품바 극단인 ‘가가’의 단원으로 들어간다. 대학로 생활의 시작이다. 그는 하급 단원으로서 포스터를 붙이고, 공연 진행 스태프로 활동하며 연극을 배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이 때 1993년 󰡔즉흥굿󰡕, 1994년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등에 출연한다.
1995년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몸담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해이다. 김정숙 대표, 권호성 연출가를 만나 모시는 사람들에 합류한 그는 본격적인 연극인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1997년 󰡔원고지󰡕를 시작으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14대 품바󰡕로 450회 공연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외에도 2006년까지 모시는 사람들에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몽실언니󰡕, 󰡔굿킬󰡕, 󰡔살인교습󰡕 등에 출연해 연기 활동을 펼친다.
2006년 선 동문은 모시는 사람들에서 ‘분가’해 극단 ‘필통’을 창단한다. 그는 필(Feel)이 통(通)하는 사람들과 모여 세상과 통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극단 이름을 필통이라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현재까지 젊은 연극인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필통에서 활동하며 2009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인 󰡔황야의 물고기󰡕, 󰡔몽연󰡕과 󰡔죽지 않아! 굿모닝 줄리엣!󰡕, 󰡔여보, 고마워󰡕 등에 출연했다.

▲ 세상에 시비를 거는 글
선 동문이 연기 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두각을 나타낸 분야가 희곡 작가이다. 1995년 처녀작 󰡔피카소 돈년 두보󰡕가 큰 호응을 얻으며 희곡 작가로서 좋은 출발을 한 그는 이후 󰡔불면󰡕(1996), 󰡔절대사절󰡕(1997), 󰡔악몽󰡕(2000), 󰡔고추말리기󰡕(2001), 󰡔의자는 잘못 없다󰡕(2002),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2006),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2010) 등 총 40여 편의 희곡을 발표한다.
선 동문의 작품은 주로 비판적 시각을 통해 사회를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멜로 작품은 하나도 못 썼다”며 웃다가도 작품 세계를 묻는 질문에는 사뭇 진지하게 “‘세상에 시비를 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의 주요 작품인 󰡔피카소 돈년 두보󰡕와 󰡔고추말리기󰡕 역시 각각 5·18 민중항쟁,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비춰지는 세상은 논리와 상식으로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뒤숭숭한’ 작품 속 세상을 통해 그는 ‘마냥 잘 돌아가는 것 같은 현실 세계’의 트집을 잡는다. 그가 생각하는 작가는 “부조리, 모순에 반기를 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 내 삶은 곧 내 운명
“연기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은 내 운명이다. 스타의 꿈을 꾸고, 이 생활을 시작했다면 3년 안에 그만뒀을 것이다. 두 동생이 각각 목사,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멋진 직업들이다. 그런데 난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흔히 예술가라 하면 ‘배고픈’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직업도 아니다. 선 동문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운명’이라 말한다. 귀인(그는 김시라, 김정숙, 권호성을 귀인이라 표현했다)을 만났고, 연극을 하며 지금의 아내(그의 아내는 󰡔피카소 돈년 두보󰡕의 ‘돈년’ 역할을 맡았었다)도 만났다. 하지만 그가 가장 운명이라 생각하는 점은 “광대로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단지 목사, 의사 역할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광대로서 줄 수 있는 감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진짜로’ 치료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 동문은 이따금 친구들을 만나면 “점점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낀다. 그는 “친구들의 정신세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며 “연극인이라는 직업이 세상과 단절된 ‘중’으로 살아야 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의 삶이 기성(旣成)에 찌들지 않은 삶이라 생각했다. 바로 “오히려 그것이 순수하고 좋은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런 삶도 좋아해야 살 수 있다”며 웃었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건지….

▲ 꿈을 키우고, 용기 발휘해야
선 동문은 지금도 필통 식구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신이 귀인들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듯이 이제 본인이 젊은이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교적 큰 극단이었던 모시는 사람들에서 나와 필통을 차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바라보는 필통의 이상도 ‘프로덕션(production)’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인큐베이팅(incubating)’의 공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 동문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학생들에게 “먼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며 “먹고 살기 위한 것 말고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데’라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신을 믿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선 동문에게는 특별한 기회 하나가 찾아왔다. 3월 7일 첫 방영되는 KBS 드라마 󰡔강력반󰡕에 고정 출연하게 된 것. 그가 출연하게 된 첫 공중파 방송국의 드라마이다. ‘쁘띠 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그는 “본래 존재감 없는 단역이었는데 한 장면 촬영 이후 분량이 많이 늘었다”며 연신 웃었다. 선 동문은 “물론 이번 계기로 인해 큰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존 살았던 삶에서 조금 더 나아갔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삶과 꿈, 그리고 운명을 이야기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냥 의자의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몽상가는 아니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조언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다. 그는 연극 없이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다.

선욱현은 ▶1968 광주 출생 ▶1986 신문방송학과 입학 ▶1992 신문방송학과 졸업 ▶1995 문화일보 하계문예 단막 희곡 󰡔중독자들󰡕 당선, 등단 ▶1993~1994 극단 ‘가가’ 활동 ▶1995~2006 극단 ‘모시는 사람들’ 활동 ▶1996~1999 한국극작워크샵 제 8기 동인 ▶2001~2005 한국희곡작가협회 사무국장, 상임이사 ▶2004~2005 한국연극협회 이사 ▶2008~2009 대전대 문예창장학과 출강 ▶2009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출강 ▶2007~2009 서울연극협회 이사 역임 ▶現 극단 ‘필통’ 대표, 서울연극협회 부회장,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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