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의 개울에는 1 m 정도 높이의 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름이면 물비린내가 제법 심하여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속담을 실감하는데, 영산강, 금강, 한강, 낙동강에 높은 보를 많이 만든다고 해서 의아합니다. 구체적인 용도가 애매한 보를 막는데 많은 돈을 쓰는 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탓에, 전문지식을 가진 분들이 진행하는 ‘4대강 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살리기’라는 말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모르는 타당한 이유나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프레드 피어스’라는 분이 쓰고 김종은 님이 우리말로 옮긴 ‘강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를 지루할 정도로 꼼꼼히 서술한 내용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을 몰라도 너무 몰랐음에 무안했고, 자연을 너무 편하고 오만하게 쳐다보았음을 반성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강을 효과적인 이용 대상으로 보았던 편협함에 매우 민망했습니다.
강이 의미 없이 흐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물이 강바닥을 통해 지하로 스며들어 대수층을 채우면서 아주 효율적으로 물을 정화하여 저장합니다. 포장된 도로와 건축물이 많아지면서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어려운 지금에도 강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정갈한 물을 지하수 형태로 저장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실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의 생명력이 바로 강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큰 강’이라는 뜻의 리오그란데 강도 댐을 만들어 주변 도시로 물을 공급하면서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물이 마르고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하류 지역의 생태계가 피폐해졌습니다.
대규모 관개시설에 의존하여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을 모래바람이 날리는 오늘날의 모습에서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는 있었지만, 그 물에 녹아 있는 소량의 염분이 축적되면서 땅이 죽어가는 자연의 원리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의 범람하면서 축적된 염분을 주기적으로 제거해주는 나일 강 유역의 풍요로움이 역설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구소련 당국이 목화 재배를 위해 물길을 돌려버린 아랄 해 일대는 오염과 질병으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끌어온 물을 사용하는 지역은 염분의 축적을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이 필요하고, 물을 빼앗긴 지역은 물이 없어서 모두 불모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바다라고 부를 정도로 크고 풍요로웠던 아랄 해는 불과 40여 년 사이에 오염물질만 날리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강의 흐름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라 땅의 생명력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흐르는 물에는 산소가 많이 녹기 때문에 유기물이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로 방출됩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을 막아놓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표면이 줄어들어 산소 농도가 옅어져서 유기물이 메탄으로 분해됩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지탄받는 이산화탄소보다 메탄의 온난화 유발지수는 25배 이상 높습니다. 강의 흐름을 막는다고 지구온난화까지 가속될 줄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댐의 건설은 광대한 유역의 수몰, 인근 지역의 기후와 생태계 변화, 천문학적인 공사비, 댐의 파손에 대한 위험 등 부담이 많지만, 홍수 방지와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긍정적인 명분을 앞세워 진행합니다. 그러나 ‘강의 죽음’의 저자는 댐을 쌓았다고 홍수로 말미암은 피해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장마나 태풍의 예보를 듣고 댐을 비워둔다면 비가 예상보다 많이 와도 피해가 나지 않겠지만, 가두어둔 물이 바로 ‘돈’인 발전소의 운영자나 주변 지역에 용수를 공급해야 하는 관리자가 댐을 절대로 비우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홍수조절센터’를 운영하여서라도 최대한 물을 가두어두기 때문에 큰 비가 내리면 홍수 피해가 도리어 늘어난다는 설명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70년대 초 여수 지역 화력발전소는 발전용수로 순천의 강물을 사용했습니다. 큰 비로 갑자기 흙탕물이 되는 상황만 대비할 수만 있다면, 여과나 침전 등 전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온교환수지 탑에 넣고 싶을 정도로 물이 맑았습니다. 4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맑은 물을 ‘물 쓰듯 쓸 수’ 있었지만,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량은 줄고 수질은 많이 나빠졌습니다. 그렇긴 해도 수돗물의 원수 대부분을 강에서 채취하는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생수’라며 지하수를 사 마시지 않아도 되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하고 겁 없이 손대면 ‘복 받은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걱정스럽습니다. 강의 물길을 막고 강의 흐름을 이리저리 바꾸는 안이하고 단편적인 접근이 얼마나 큰 재해를 불러올지 두렵습니다.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서둘러 진행되는 토목공사가 우리의 자랑이었던 ‘금수강산’에서 ‘강’을 빼야 하는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라는 우리 속담 대신 지금은 ‘물이 돈과 권력을 보고 흐른다.’라는 ‘강의 죽음’ 저자의 지적이 섬뜩하고 충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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