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입어 구멍 뚫린 면티에 천조각을 덧댄 황토색 바지에 구리빛 피부를 한 시골 할아버지 윤구병 씨. 가족들이 오랑우탄이라고 부르는 그는 불과 몇 년전까지 충북대 철학과 교수였다. 교수생활을 접고 변산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변산에 왔지만 지금 그의 모습에서 교수 흔적이라고 찾아볼수 없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일하고 먹고 일하고 자는 변산 생활에 실망한 눈치를 보이는 이들에게 윤구병 씨는 "도시에 사는 사람 스무명이 먹고 살 것을 나같이 늙은이들이 다 지어야하니 뼈빠지게 일하는 것"이라 한다. "서양사람들이 침략하기 전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루에 한시간만 일하면 신나게 놀수 있었던 것처럼 살아야한다"는 그는 "도시의 인구가 반은 돌아와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큰 재앙이 오면 가능할 것이라며 말꼬를 튼다.
윤구병 씨는 "부시같은 패권주의자들이 여럿 나타나서 전쟁이라도 나 일주일만 석유가 공급이 안된다면?"하고 질문을 먼저 던진다. 도시의 생활이 마비가 되면 도시사람들이 되돌아 갈 곳은 농촌밖에 없는데 비료도 농약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은 유기농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유기농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곳곳에서 이들을 안내해야하기에 그가 생각하는 변산공동체는 "언젠가 다가올 위기에 징검다리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기계나 농약, 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노동력만을 이용하는 유기농. 언뜻 공동체 생활에 노동력을 우선 꼽을수도 있겠지만 이 곳에선 무엇보다 '인간관계'도 중요하단다. "수녀들이 종신서원을 눈앞에 두고도 그만두는 것은 인간관계 때문이라는데 여기는 종교도 없고 그저 함께 농사짓고 사는 건데도 쉽지 않다"는 윤구병 씨. 그가 말하는 공동체 사람은 "오갈 데 없고 혼자 살 수 없는 절박함이 있는 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사람이 사람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씨뿌릴 때 뿌리지 않고, 거둬들일 때를 놓치면 죽음인 이곳, 그들의 인간관계는 통제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함께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변산공동체의 지나온 8년여를 돌아보며 그는 "앞으로도 이곳이 안정되려면 30년은 필요"하단다. 아직 말도 못하는 공동체의 아이들이 자라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됐을때 이곳과 비교해보고 이곳이 삶의 대안이 될수 있음을 인식해 뿌리박고 또 자식을 낳고 3대가 정착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리라 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어지는 30여년을 기약하는 이곳의 삶에서 그는 희망을 확신한다

백지선 기자 kindpl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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