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60년이 지나면서 남과 북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유독 한 가지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면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세습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남과 북에서 3세대 승계 잔치를 목격하게 된다. 北은 정권 승계, 南은 경영 승계.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가 권력의 승계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독재정권과 민주정권, 사회체제는 이렇게 다른데 기득권이 핏줄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같은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세습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자. 다만 경영학 시각에서 세습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나라든 기업이든 한 조직을 맡은 수장(首長)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국민의 행복(나라의 성과), 기업의 성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직의 수장을 뽑는 일은 중요하다. 조직의 성과를 최대로 올릴 수 있는 수장을 뽑고 싶어 하는 이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더 좋은 대통령, 더 좋은 CEO, 더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기회는 지원자가 많을수록 경쟁이 높을수록 커지게 된다. 윤리적인 면을 떠나서 북한이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에게 권력승계를 한 것은 북한을 더 잘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창업 회장의 손자, 손녀들에게 기업 경영권을 물려준 것도 그 기업을 더 잘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스스로 제한한 꼴이다. 혹자는 호부(虎父)에 견자(犬子)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맨땅에서 자수성가한 창업 세대의 기업가 DNA는 세대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오히려 세대가 지나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기업가 DNA를 지닌 인재가 배출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니던가? 최고 성과를 지향하는 조직이라면 최고 CEO를 뽑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단 한명의 지원자만 있는 조직과 수많은 경쟁에서 걸러진 지원자가 있는 조직, 누가 더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지 답은 자명하다. 경영학적으로 세습은 옳지 않다. 더 좋은 기회를 스스로 제약하는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올 가을 방송계 최대 이슈는 단연 슈퍼스타K였다. 무려 140만 명의 지원자 중 네 명, 두 명, 그리고 최종 한 명이 슈퍼스타K가 되었다. 만약 그 프로그램이 조용필, 나훈아, 전인권의 친척 중에서 가수를 선발하는 것이었다면 그만큼 재미있었을까? 아니 그만큼 훌륭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를 뽑을 수 있었을까?

뚜렷한 명분 없이 제약하는 것을 차별이라 부른다. 인종, 성별, 지역, 종교가 다르다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지만 기업 경영에서 차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더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을 아예 뽑지 않는 기업은 인재 풀pool의 반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다. 다양성이 우월한 것은 절대적 가치를 넘어 생존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고 민주주의가 우월한 것도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습의 경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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