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에 빈에서 열린 ‘한국과 동유럽의 문학과 문화예술’이라는 주제의 학회에 참여하고, 동유럽의 몇 도시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부다페스트며, 프라하, 체스키 크롬코프 등 헝가리와 체코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카메라 조작이 서툰 내가 사진을 찍어도 그대로 엽서의 풍경이 되어 버릴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빈이나 잘츠부르크와 같은 오스트리아의 도시들이었다. 헝가리와 체코의 도시들이 과거의 유산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정적이고 장중한 분위기였다면, 오스트리아의 도시들은 천 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과 현대의 세련된 문화가 함께 숨쉬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클림트는 빈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레오폴드 박물관과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은 관람객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혹은 그가 즐겨 쓰는 문양이 프린트된 도자기와 티셔츠, 우산, 가방 등 각종 기념품은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즐겁게 열게 하였다. 그림을 좀 이해하는 사람들은 표현주의 작가인 에곤 쉴레에 주목하는 모양이었으나, 대중의 한 사람인 나는 ‘키스’의 금빛 유혹에 사로잡혀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슈베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등을 길러 낸 도시답게 빈은 클래식 음악을 브랜딩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빈에서는 카페든 어디든 모든 공적인 장소에서 클래식의 연주만을 허용한다고 한다. 이것은 다소 인위적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문화를 상품화하기 위한 전략이니까, 세상의 어느 한 군데쯤 클래식 선율만이 넘쳐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고, 그곳이 세계적인 음악 도시인 빈이라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공원 안에 자리잡은 쿠어 살롱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듣고 있으려니 격조 있는 삶을 향유하고 있는 듯, 문화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이 이런 즐거움을 주는 것이구나 싶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음대에서부터 모차르트 초컬릿에 이르기까지 온통 모차르트 브랜드로 생활하는 도시였는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된 미라벨 궁전의 정원이나 호헨잘츠부르크 성의 전망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였다. 좁은 골목에 즐비한 카페와 상점들은 예술품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철제 간판들을 달고 있었는데, 맥도날드조차도 자신의 고유한 마크를 거리에 어울리는 의장으로 바꾼 이곳은 새로운 간판이 들어서려면 엄격한 규제와 미적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도시들이 살아있는 문화 도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전통과 예술의 조화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과제인 환경 운동의 선진적인 자세를 세련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 도 같았다. 빈의 도심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이 건축물로 서 있는 듯한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데, 다이옥신이 전혀 검출되지 않으면서, 빈의 25만 가정에 난방을 공급하고 있는 이곳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건축가 훈터트 바서의 작품이라고 한다.

클림트, 모차르트, 그리고 오스트리아,

이번 여름에 내가 누렸던 문화적 호사는 남은 해를 너끈히 보낼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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