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 후배 녀석이 내게 멋진 말을 내뱉고 간적이 있다. ‘인권 변호사’ 참으로 멋진 말이다.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으면서 자신의 전문성도 확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고민해 보면 인권변호사라는 꿈이 얼마나 허울만 좋은 꿈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인권에 대한 고민도, 주위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으면서 인생의 목표가 인권변호사라니, 차라리 돈 많이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면 더 멋진 꿈이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우린 어느덧 대외적인 명성을 자신의 꿈에 반영하여 자신의 꿈을 합리화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대기업’과 같은 우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는 직장인에 대한 소식을 심심찮게 접한다. 자신의 꿈이 명확하지 않은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특히, 높은 학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꿈을 찾아 재도전하는 시도를 많이 한다고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직업의 조건을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고 안정성 혹은 복지 등으로만 기준을 정하여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있다. 단지, 자신의 진정한 재능이나 상상해오던 꿈의 실현이 아닌 단순한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도서관에 가보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기업 혹은 공무원과 같은 안정성과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전문직에 종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 과연 자기가 정말 하고 싶어서 혹은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결국 지금의 공부 과정은 단순히 허울만 좋은 미래를 위한 투자는 아닐까? 결국, 보이기만 좋아 보이고 자신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직장이 얼마나 본인에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

 젊을 때 고생은 누가나 할 수 있지만 자아 성찰 없이 선택된 직장은 시간이 지난 뒤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렵다. 또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간 자의 직장생활도 치열한 경쟁과 과도한 업무에 지치는데 하물며, 직업의 안정성과 돈만 쫒아 잡은 직장은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권 변호사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자만이 견딜 수 있는 직장이다. 단순히, 멋지니깐, 멋있게 말하려고 제시하는 ‘인권’은 자신의 옷이 아닌 남의 옷을 입은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획일화되고 있는 직업군에 놓여 있는 우리지만, 좀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이 상상하고 하고 싶은 일에 젊음을 투자하는 것은 어떨지 한번 고민해본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