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0년,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5-18 민중항쟁의 30주년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가 5월 26일-28일 사이에 열렸다. 정부 주도가 아닌 국제회의를 열기 위해서는 여러 단체의 협력과 지원, 스탭진의 엄청난 숨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5-18 기념재단, 비판사회학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조선대학교 등 많은 단체가 관여를 했고,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의미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다만, 커다란 행사에 비해, 파급효과는 적을 듯하다. 필자는 이 회의의 준비과정을 모르고, 여러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회의에 대해서 전반적인 논평을 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다만, 학술회의의 사회를 한번 보았던 참석자로서 두 가지의 소회를 적어 두고자 한다.
첫째, 회의에 참석한 사람이 적었다는 점이다. 내가 사회를 본 회의의 경우, “대안 사회, 대안 운동”이라는 주제 아래, 두 사람의 훌륭한 발표가 있었다. 첫 번째로 독일 대학의 교수이며, 활발히 정당 활동을 펼치고 있는 Opielka는 이제까지의 복지국가의 기본 원칙이 가족(보수적 복지국가), 시장(자유적 복지국가), 국가(사회민주적 복지국가) 등이 중심이었다면, 임금노동자의 수가 줄어드는 미래의 비-노동사회의 경우,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복지국가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는 독창적인 논리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Ellner는 차베쓰 정부 하의 사회운동에 대하여, 급진적인 운동가, 온건운동가, 현실주의자 사이의 논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중남미 지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베스를 이해하려면, Ellner의 연구는 필수적으로 참조하고 읽어야 한다. 이들의 연구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 정도의 연구라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법과대학의 111 강당에 참석한 인원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이다. 학술대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학자들을 제외하고, 참석한 학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었다. 학부 학생이라곤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뿐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업시간 때문인지, 중간에 빠져 나갔다. 다른 회의도 대체로 20-30명이 참여하였다고 들었다. 발표자의 한 사람인 Ellner는 왜 이리 청중이 적으냐, 국제행사에 이렇게 청중이 적으면 예산낭비가 아니냐고 필자에게 물었는데, 필자는 똑부러진 대답을 주지 못했다. 왜 이리 호응이 적었을까? 무엇보다도, 홍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똑같은 장소에서 삼성을 고발하는 김용철 변호사의 강연이 있었는데, 그때 자리가 모자라서 돌아간 인원이 강당에 들어간 인원보다 많았던 점을 필자는 알고 있다. 강연주제가 그 자체로서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강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법과대학, 사회과학대학 건물의 곳곳에 붙어있는 것을 보았고, 학교 앞의 골목길에서도 강연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게다가 강연의 포스터를 보고, 학교에 온 졸업생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번 국제회의에 대해서 이런 정도의 홍보활동은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한 보다 적극적인 홍보도 아쉽다. 5-18항쟁이 삼성보다도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30주년 행사는 그저 또 하나의 연례행사에 불과한 것인가?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소위 국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회의 참석자들의 경력은 흥미로웠다. 베네주엘라 연구가는 미국 출신으로 베네주엘라에 연구 차 갔다가, 그곳에서 교육을 하고, 결혼을 하고, 33년간 베네주엘라에서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연구가는 젊은 시절 멕시코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결혼하고, 30년 이상을 살아오며, 인간의 주체적인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어가 유창한 벨기에 출신의 한국연구가는 항쟁과 기억이라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회의 다음 날 망월동 국립묘지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한 미국 연구가는 미국에 살면서, 광주항쟁을 누구 못지않게 깊이 연구하고 있고, 또 다른 미국인 연구가는 1963년 이후, 수 십 차례나 대중의 항쟁의 현장에 있었고, 그로 인해 항쟁의 패턴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적인 연구가가 된다는 것, 세계적인 시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이들처럼 남다른 시각을 발전시키면서, 한 주제를 수 십 년에 걸쳐 철저히 파고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국제화를 외쳐대는 우리가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옆에 있었다는 것, 그런 기회가 그저 또 하나의 연례행사로 흘러갔다는 것 - 아쉬움이 크다. 다음 번 회의에는 보다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여, 사고와 감성을 키우는 기회로 삼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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