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 정녕 안녕한가요.

얼마 전 고려대 김예슬씨가 자퇴선언을 했습니다. 대학이 공장으로 전락해버린 오늘날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김예슬의 선언 앞에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4월 12일에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금호타이어 노동자가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왜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도 평범하게 사는 게 어려운 사회가 됐는지 참으로 이상합니다. 대학에서는 삶에 필요한 학문을 배우는 것이, 노동자는 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사회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심화되는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진 마세요.

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완전한 회복이 되지 않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권리는 축소되고 있습니다. 대학생에게는 높은 등록금과 좁아져가는 취업문으로,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으로, 여성에게는 더 싼 임금과 더 쉽게 해고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은 끊임없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축소되어 가는데, 여전히 지배계급은 모순적이게도 위기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위기를 민중들에게 전가하면서, 해외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정리해고를 말없이 진행하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축소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원천봉쇄하고자 각종 공안탄압을 일삼고 있습니다.

120년 전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합시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가 당연한 노동시간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극도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온갖 전염병으로 평균 수명이 25세밖에 되지 않았던, 그런 상상할 수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여가와 휴식이 필요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 때,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혹한 현실에 반대하고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기계를 멈추고, 일손을 놓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1886년 5월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비무장 노동자들은 경찰의 발포로 죽고 다쳐 쓰러져갔습니다.
우리는 그 때 죽고 다친 노동자들의 숫자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녀들의 저항을 계승하고자 1890년 5월 1일 전 세계 노동자들은 또 다른 헤이마켓 광장의 봄을 계획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후 매년 5월 1일은 노동자들이 ‘인간’이기 위한 권리를 그/녀들의 목소리로 직접 요구하는 투쟁하는 날로 이어져왔습니다. 8시간 노동은 상식이 되었지만 그와 함께 구조조정도 상식이 되어버린 오늘날입니다. 다시 120년 전의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기억하면서 구조조정이 상식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보편적인 권리는 함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학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권리와 수많은 이야기, 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외치는 권리는 결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님을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자리가 바로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남대에서 부터 노동할 권리, 우리의 보편적인 권리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노동권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은 쉴 새 없이 트랙을 달려야하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권리를 함께 이야기 해 나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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