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들과 모이면 나누는 핫이슈는 성범죄와 관련한 사건들이었다. 아동부터 시작하여 청소년, 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무차별적으로 성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남성도 피해자인 경우도 있지만 연일 뉴스에 터지는 보도들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나와 친구들의 성별 역시 여성이기에 성범죄와 관련된 최근 보도들은 우리를 위축되게 한다.

가령 호루라기나 호신용 무기를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집골목이 좀 으슥하니까 저녁에 일찍 들어가라며 서로 다짐을 받기도 하고 위험한 사람을 만나면 급소를 가격해야한다며 귀동냥으로 들은 호신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해결 방안은 전혀 대안이 되지 않는 줄 알기에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의 이야기에 허무맹랑해하기도 한다.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는 피해를 당한 여성과 그 가족들의 아픔에대해 옮겨간다. 피해 개인의 일생이 어그러지겠구나 싶은 생각부터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나 싶어 답답해진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나 가해자의 가족들에게 복수하고 싶겠구나 하면서도 복수하면 뭐하겠어 그렇다고 이미 가해 사실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체념하게 된다.

성범죄가 연일 터지고 정부에서 내놓은 성범죄 관련 대책은 전자 팔찌 소급 적용, 성범죄자 개인 신상 정보 공개, 보호 감호제 부활, 사형 집행 재개 같은 처벌 강화 방침들이다. 정부는 이러한 방법들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그들과 공감하는 사람들 전체의 분노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처벌 조항에는 피해자나 가해자, 혹은 잠재적 피해자나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장기적 대안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부의 대책에는 인권에 대한 어떤 감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소한 사람들의 사소한 대화에서도 존재하는 아픔을 정부는 읽지 않는다. 정부의 대책에는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잠재적 사람들에 대한 감성이 없다.

성범죄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일은 성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는 일이다. 성범죄 예방은 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굴레를 씌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성범죄자와 관련하여 정신이상이라거나 불우한 가정이라는 등의 사건보도 속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권은 없다. 오히려 이 사회의 또 다른 약자 층들의 인권에 해만 가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정부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무용지물이다. 누군가는 또다시 가해자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또다시 피해자가 될 뿐이다. 아직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상태의 사람들에 대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되찾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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