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기, 딱지치기, 씨름, 닭싸움, 겨울에는 토끼몰이, 그리고 칼싸움, 총싸움... 이것은 내가 유년시절에 즐겨했었던 놀이들이다. 그랬다. 나는 유년시절을 거의 놀이로 보냈다. 그때는 노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그래서 잘 노는 친구가 우리들에겐 대단한 인물(?)로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형, 누나가 그랬듯이 광주로 전학을 왔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온 광주는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광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내 고향과는 다른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새로 사귄 친구가 데리고 간 시내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 외적인 것은 말 할 것이 없었고 내 또래 친구들인데도 나하고는 다른 게 많았다. 그때 난 나의 조그만 우물로 본 세상을 감지했다. 순간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는 것 같은 열등감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진저리가 쳐쳤다. 그렇게 지내다가 진학한 대학은 나에게 또다른 세상이었다. 쥘 듯한 고등학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좋아 맘껏 소리질렀다. 그랬다. 대학은 나에겐 일종의 해방구였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자유로움에 취해 있는데도 가슴 한구석엔 뭔가 허전한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가끔 느꼈다. 이상했다. 그 이상스런 기류는 나중엔 내 머리를 또아리 틀 듯 나타나곤 했고 그것은 바로 나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생각임을 나중에야 알아 차렸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나의 미래에 대한 성찰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구체화 되었고 결국 나는 나만의 탑을 쌓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 세월이 만들어준 나의 꿈의 탑을.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자연 속에서의 호연지기와 자유분방함 속에서의 변모를 통한 대학생활이 나의 목표의식을 곧추세우는데 무엇보다도 큰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그런 목표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음을 느낀다. 또, 무한히 변화하여 나아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하다. 훨훨나는 나비가 어떻게 처음부터 나비였겠는가. 탈바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은 누구나가 아는 일이다. 어떤 종류의 매미는 열일곱 번의 탈바꿈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무수한 허물을 벗은 뒤에라야 시끄러운 매미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지 곤충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탈바꿈하고, 탈바꿈시켜주는 것은 배움(학습)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무수히 배우고, 열심히 배우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변모시키는 첩경이다. 그때가 지금이다

어느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외국의 어느 대학 수족관에는 크기가 대여섯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상어가 살고 있다. 처음에 같은 크기의 상어로 먹이를 같이하여 키운 상어가 어떻게 크기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 분야를 전공한 나도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수족관 크기를 달리했다는 것이다. 즉, 수족관이 작은 곳에서의 상어는 그만큼 자라고 좀 더 큰 수족관에서는 더 크게 자랐던 것이다. 그 답을 들었을 때 정말 내 머리를 뭐가 퉁하고 때리는 것 같았다. 잠시 그 충격에서 벗어나 보니 그것은 단지 어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지난 해에 광주 캠퍼스에서 리더쉽 교육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수에서 올라와 오후 늦게까지 하는 수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받는 내내 즐거웠고, 또 여러 교수님과의 교류는 또다른 배움이었다. 그렇게 즐거웠던 것은 아무래도 배움이 나에게 길들여진 것이고 그것에서 남모를 즐거움을 느껴서인가 싶다. 그래서 어느 현인이 이렇게 말했나 보다.

“배우고 또 배우니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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