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는 많은 시간 속에서도 하루하루가 여유가 없다. 이것저것 하는 건 많은데 정말 내가 해야 될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답답한 마음에 무엇 하나 제대로 잡히는 게 없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이 터지기 직전에 혼자 어디든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집에 있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유를 배우러 떠나야겠다고 나 자신에게 통고하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어딜 가야 여유로울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곳이 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소사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를 하러 갔다. 내소사 입구에는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전나무 숲길이 있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다웠지만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전나무 향내가 저절로 걸음을 천천히 하고 숨을 깊이 마시게 했다. 이곳에 있다는 게 행복했고 깊은 호흡을 하며 이 시간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여유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전나무 숲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은 정말로 편안했다. 내소사 입구에 도착하니 템플스테이 담당 종무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2월에는 신청자가 없어 템플스테이 기간에 혼자 지내게 될 거라고 하셨다. 혼자라는 말에 나는 더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좋은 기대감이 들었다.


방에 들어가서 스님들이 입으시는 법복으로 갈아입고 고무신을 신고 나왔다. 방 안에는 수련생이 지켜야 할 청규가 붙어 있다. '묵언하며 지내고, 단순하고 느리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신발을 끌어서는 안 되며 벗어 놓은 신발은 항상 가지런히 정돈해야 합니다.' 공양시간이 20분까지인데 준비하다 보니 16분이 되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져서 마음이 급해진다. 고무신을 꾸겨서 신고 질질 끌며 껑충껑충 뛰어가다 또 서두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소변을 보기 위해 허리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것도 너무 번거롭다. 하지만 여유로움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급한 마음을 반성하고 천천히 걸음을 걷는다. 흙의 생명까지 아끼는 마음으로 스님들이 2/3만 땅을 밟고 걷는다는 사실을 듣고 발뒤꿈치를 세워서 걸어본다. 쉽지가 않다. 하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 마음에 기분이 좋다.
절에서는 9시 이후에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저녁 드라마도 아직 시작하지 않을 시간인데 자려고 누우니 잠이 안 온다. 이런저런 잡념에 쌓여 30분 정도 뒤척거리다가 잠이 든다. 기상 시간은 3시 30분이다. 3시 30분에 알람은 울리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비몽사몽으로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절을 드리려고 어느 자리가 좋을까 생각하며 방석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스님이 한마디 하신다.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님을 마음으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아차 싶어서 바로 방석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음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계속 생각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스님이 차 한잔 하자고 나를 부르신다.
"젊은 학생이 무슨 고민이 있어 이곳에 왔을까?"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유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세상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어. 하루하루 수행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라네."
스님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더 구체적으로 답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아침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서 "나중에 인연이 된다면 또 찾아오게나."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짧은 템플스테이였지만 다시 전나무 숲길을 나오며 마음이 한 움큼의 모래만큼은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물론 난 내가 그렇게 찾던 여유를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하면 여유롭게 살 수 있는지 알 것 같다. 바로 스님처럼 사는 것이다. 스님은 저녁 9시가 되면 자고 새벽 4시가 되면 예불을 드린다. 항상 주변을 가지런히 하고 온 마음 다해 절을 드린다. 이렇게 하루하루 수행하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절에서 느낀 여유를 평생 잊지 않고, 이제 전나무 숲길을 걷듯이 천천히 깊은숨을 쉬면서 살아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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