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존 케네디는 일본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의 정치가는 누구입니까?”
케네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우에스기 요잔입니다”
일본 기자들은 놀랐다. 사실 우에스기 요잔은 기자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도꾸가와 이에야스나 사까모토 료마, 후꾸자와 유키치 등을 예상했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케네디는 일본 기독교 성서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1894년에 영어로 쓴 일본과 일본인 이라는 책을 읽고 우에스기 요잔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에스기 요잔은 막부시대인 18세기 중엽 규슈의 작은 영주집안에 출생하여 15세의 나이에 일본 동북지방의 작은 요네자와 번의 번주에 오른 사람이다. 요네자와 번은 땅도 좁고 토질도 좋지 않았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대 째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온 몰락 직전의 번이었다. 그러나 당시 요네자와 번은 관습과 절차, 형식에 사로잡혀 위기에 처한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관료들은 자신의 지위만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백성들은 정부와 관료를 원망하면서 체념에 빠져있었다.
번주에 오른 2년 뒤 우에스기 요잔은 과감히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철저한 검약을 솔선수범하며 행정을 쇄신하고 산업을 장려해서 몰락직전의 영지를 다시 살려내었다. 쌀농사 외에 척박한 토질에 맞는 뽕나무, 옻나무 등 경제성이 있는 작물재배를 적극 권장했고 인구 확보를 위해서 이웃 번의 여성을 불러들이는 이른바, 농촌 총각장가 보내기와 같은 작전까지 단행했다. 당시 통치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까지 몸소 행하며 기득권 세력의 타파에 힘썼다. 식사는 매 끼마다 밥과 국 한 그릇만 올리도록 했으며, 쌀농사 밖에 모르던 사람들에게 경제성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멀리서 기술자를 많은 돈을 주고 데려왔다. 또한, 부족한 농토를 보충하기 위해 무사들의 마당에도 작물을 심으라고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요네자와 번은 불과 20년 만에 일본 최고의 알짜 번으로 바뀌었다.
요약하면 그는 번이 처해있는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서 그 해결 방법을 찾아내었고 일을 수행하기 위해 관료를 포함한 백성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었고, 자기 주위의 기득권 세력을 시범적으로 척결하고 이를 통해 백성들의 지지와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눈을 돌려 우리 주변의 현실문제를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과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두 가지 사업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일인지 답답할 뿐이다. 우에스기 요잔으로 부터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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