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삼국유사』를 다시 뒤적이게 되었다. 그 많은 글 중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켰다[金現感虎]’는 이야기. 예전에는 호랑이와 인간의 사랑을 즐겁게 읽었는데, 다시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호랑이는 행복했을까?
「김현감호」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먼저 김현의 이야기를 보자. 신라의 김현은 밤이 깊도록 탑 돌기를 하다가 자신을 따라 온 처녀와 정을 통하고, 억지로 처녀의 집을 따라 간다. 처녀의 오빠들인 세 마리의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나타난 위험한 순간, 하늘에서 그들 중 한 명을 죽여 악을 징계하겠다는 외침이 들린다. 처녀는 자신이 대신해 죽겠다고 하고, 오빠들은 기뻐하며 달아난다. 그리고 처녀는 김현에게 자신이 사람들을 해치면 잡아서 벼슬을 하라고 한다. 김현은 처녀의 말대로 다음날 사람을 해치던 호랑이를 쫓아 숲으로 들어가고, 사람의 모습으로 김현의 앞에 나타난 처녀는 김현의 칼로 스스로 목을 찌른다. 그리고 김현은 호랑이를 잡은 공로로 벼슬에 오른다.
다음으로 당나라 신도징의 이야기이다. 신도징은 부임 받은 곳으로 가던 중 눈보라를 만나 한 집에 묵게 된다. 그 곳에는 늙은 부모와 14,5세 쯤 된 처녀가 살고 있었고, 그는 처녀에게 반하여 청혼을 한다. 처녀의 아버지는 기뻐하며 허락하였고 다음날 처녀는 신도징의 아내가 되어 함께 길을 떠난다. 둘은 아이도 낳았고, 신도징은 아내를 매우 사랑하여 시를 지어 주기도 하였다. 아내는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 두고 본가로 돌아가려 할 때 슬퍼하면서 ‘부부의 정도 중요하지만 산림(山林)에 뜻이 깊다’는 시로 화답한다. 그리고 집에 들렀으나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종일 울다가 벽에 있는 호랑이 가죽을 보더니, 웃으며 그것을 뒤집어쓰고 호랑이가 되어 떠난다.
자신들을 대신해서 여동생이 죽겠다는데 살았다고 기뻐하는 오빠들, 사랑하는 여자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 이를 이용해 벼슬을 하는 남편. 그러나 김현의 호랑이는 자신의 희생을 본인이 택했으니 이 이야기는 남겨 두도록 하자. 그러나 신도징의 호랑이는 어떠한가? 일연은 신도징의 호랑이가 사람을 배반했다고 비판하였다. 신도징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꼈는데, 아내는 아이까지 버리고 떠났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어린 나이에, 처음 본 남자와 결혼하여 다음 날 바로 부모 곁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 그녀.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12살의 나이에 아이를 낳다 죽고, 10살의 나이에 남편의 성폭행 등으로 시달리다 이혼을 제기하는 등, 조혼으로 고통 받는 예멘의 소녀들을 떠올린 것은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도징의 입장이 아닌,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짓는 호랑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일연의 서술 너머에 있는 호랑이의 아픔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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