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야구계에는 훌륭한 명장 감독들이 많다. 우선 한국 시리즈를 10번이나 제패한 김응룡 감독을 비롯해서, 생애 통산 980승과 2009년 WBC에서 우리국민들에게 준우승을 선사한 김인식 감독,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경문 감독, 그리고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올해 19연승의 기록으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소위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 등이 그들이며, 올해 기아 팀을 정규리그 1위로 끌어올린 조범현 감독도 존경의 대상이다. 그분들 중 SK 팀의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출생하여 대학생 시절 야구선수로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식 어투로 말하며, 그의 야구 스타일도 일본식 스몰야구를 많이 닮았다. 그 점에 대해 지지와 반발이 있다. 지난 달 26일 19연승을 거두고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하는 경기 후에 김성근 감독이 KBS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그의 말과 숨결 속에는 야구에 대한 강한 열정과 불굴의 집념이 배어 있었으며, 거기에는 그의 삶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고통과 좌절이 압축되어 섞여 있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과 승리를 위한 절실함이 그의 말 마디마디에 묻어 있었다.
시즌 초반 한때 1위를 달렸던 SK팀이 선두 기아 팀과 6게임 반 차이로 2위로 내밀렸고, 곧 3위로까지 쳐질 지경인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당시를 “마지막이다”, “내일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았다”, “갈 때까지 가자”,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 중 70-80%가 SK가 올해는 어렵다고 보았고 자신도 그런 우려가 들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없는 것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했고 선수들이 “그만큼 고생했는데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이었으며 “SK가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야신”이라는 칭호에 대해서 묻자 그는 “내 삶은 1년 내내 미스테이크 투성이”인데 그런 호칭이 어울리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 책임을 돌린 적이 없으며 “내탓으로”하는 성격으로 다만 “하루하루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산다고도 했다. 그의 팀이 침체에 빠졌을 무렵 LG팀과 2:2로 비긴 적이 있는데, 그날밤 그는 자책감으로 몸져누웠으며 새벽 3시에 몸이 너무 아파 쓰러질 지경이어서 병원에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야구 세계에서 완벽을 지향하지 않으면 결코 게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야구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묻자 그는 그런 인생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야구 아니면 살길이 없었다. 그래서 야구를 선택했고 야구를 통해서 내가 성숙했다”고 대답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본인의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려울 때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고 했다. 자신에 대해 세상에서 비난이 쏟아질 때 그것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으며”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다만 순간순간 무슨 생각을 해야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세상에 맞추어 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김성근에게 야구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인생”이며 “생명선”이어서 그것이 없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힘을 주었으며” 끝이 없는 “잠재능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말을 맺었다.
김성근 감독에게 절박한 생명선인 야구경기가 나에게는 즐길만한 스포츠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야구가 김성근 감독에게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만큼 나에게는 더 큰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내 자신의 삶의 “야구”에 대해 나는 김성근 감독처럼 “생명선”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 만큼의 절박함과 절실함, 열정과 집념으로 나의 “야구”를 해오고 있는지 마음을 비추어보면서 나는 지금도 많이 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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