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던 2002년 학교는 지하철 공사를 하는 줄 알았다. 사범대부터 2생까지의 도로는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그리고 10여개의 건물이 늘어가는 동안 비가 오면 흙탕물이 튀겨도, 트럭이 내뿜는 먼지를 마셔도, 전남대에 왕릉이 생겼다고 뉴스에 나오는 웃지못할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학교의 급속한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전의 상징이어야 할 것들이 어색하기만 하다. 건축도 조경도 모르는 문외한이 보기엔 정문 언저리 최신기법 건물은 면벽수도승 같고, 운동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던 장소의 불야성은 돈키호테가 싸우던 라만차의 풍차 같다. 후문 쪽에는 군입대할 때 공사중인 건물이 군제대 후에도 공사중이더니 용지 위 섬 같기만하다. 지금은 후문 농구코트 자리에 건물이 또 올라가고 있다. 이건 또 뭐라고 비유를 해줘야 할까?
현재의 영광에 만족하면 끝인 것을, 지금 건물들 자리엔 무엇이 있었을까 하나씩 찾고, 꼬투리 잡기를 취미 삼는건, 우리 학교의 조경은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수려한 하나의 유기체라고 자부하였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지루하지 않게 바뀌는 형형색색의 공간에서 2만학우가 곳곳에서 만들어내던 생동감은 문자 그대로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나 조화가 하나둘씩 어긋나더니 학교는 빽빽이 채워지고만 있다. 비움으로써 학교를 극대화 시키던 우리의 공간들은 건물에 둘러싸인 침묵만이 무성해졌다. 어떤이에게는 자투리땅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곳이 사색의 공간, 휴식의 공간, 열정의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거기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온갖 생물들이 뿜어내는 살아있음의 소란스러움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뭐든지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의 습작소였다. 그러나 파헤쳐지는 순간 무한한 상상력은 허공에 닿은 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학교의 외적 팽창의 극대화가 학생들의 발전과 접점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채워져 가고만 있다. 학생들의 공간을 없애는 대신 기존건물들 리모델링 잘하면 되는건 아닌가? 건물 짓는 돈으로 학생들 학습여건 개선을 해주면 안되나? 2만명 학생수는 제자리인데 왜 건물들만 늘어나지?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서 운동해? 파헤쳐지는 만큼 높아지는 건물만큼 불만만 늘어내고 있다.
학생의 신분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기에 늘어놓은 횡설수설인듯 하다. 하지만 다음 10년이 오는 동안 용지를 메우고 싶다는 조급함은 갖지 말아주시라. 관현로 옆 돌길은 남겨주시길, 응큼동산이 평평해지고 경영대앞 소프트볼 하는 학생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이런 나의 망측한 상상력이 가지는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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