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관게 ‘예측 가능한 미래’없나
지난 해 금강산 관광의 중단에 이어 한 동안 경색국면에 접어들었던 남북관계에 최근 들어 몇 가지 면에서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북한은 지난 8월말부터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직접대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한 5개항의 합의를 도출했으며,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를 맞아 특사조문단을 파견하였다. 조문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여 남북협력 증진을 바란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선 2009년 8월 4일,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클린턴 대화’를 가진 바 있다. 이 대화에서 북미 양측은 그 동안 억류되었던 여기자 석방문제 뿐만 아니라 (비록 미국은 부인하지만) 북미 사이의 주요 현안도 폭넓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북한은 개성공단 유성진씨와 연안호 선원들을 풀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은 금번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준비하기 위한 회담까지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민주당 집권에 이어 일본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집권함으로써 과거 동북아에서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이 변화하는 데 청신호가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모처럼 조성된 동북아의 평화와 남북간 화해무드가 최근 북한의 황강댐 방류로 인한 ‘임진강 사건’으로 또 다시 휘청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이 시점에서 과연 남북관계가 풀리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꼬이는 것인가? 하필 이 시점에서 ‘방류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하는 점들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매번 되풀이 되는 이같은 남북관계의 명암으로 인해 한반도는 국제사회에서 한 치의 앞도 예측이 어려운 사각지대로 비추어진 것이다.

▲ 남북 모두 분단체제의 활용에 급급
분단 64년의 세월이 증명하듯이, 남북간에는 갈등과 화해국면이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어 왔다. 따라서 금번처럼 화해와 대결의 교접(交接)국면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이 못된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현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라기보다는 분단체제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모순의 연장선상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질곡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남북관계는 한 축에는 대립과 갈등기제를, 다른 한 축에는 화해와 협력의 동인을 내장하면서 서로에게 속내와 신호를 감춘 채 일종의 모호한 생존게임을 지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갈등해소나 통합의 해법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때론 서로가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활용함으로써 체제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이같은 환경에서 하나의 현상을 예측해내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또 다른 돌발변수가 나타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처럼의 해빙무드와 뒤이은 ‘임진강 사건’ 역시 보다 근본적으로는 분단체제가 내장하고 있는 이러한 기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해법은 이같은 분단체제가 본질적으로 매우 불편하며 남북 모두에게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는 ‘구조적 속박’이므로 상호 공멸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공론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을 공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 ‘기다리는 전략’에서‘두드리는 전략’으로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패턴은 ‘기다리는 전략’이었다. 이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미국의 대북권고로 남북관계가 복원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의도적인 무시’나 다름없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일각으로부터 비현실적 정책 혹은 무책임한 ‘무정책’이라고 지적되어 왔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과거 정부가 이룩한 통일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대남 강경행동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생존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를 국내 보수층의 결집과 여권 지지도 상승의 호재로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기에 앞서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함으로써 평화적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벌여야 한다. 여기서 대화가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까지 역사가 말해 주듯이 우리가 북한에 대해 무시 일변도의 자세로 남북관계의 해결의 책임을 방기하게 되면, 훗날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메카톤급 이슈가 발발했을 경우, 과연 주도적으로 협상의 지렛대를 쥘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국제사회의 세력 역학에 편승하되 민족사적 이해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대북정책 조정에서 무엇보다도 핵문제 진전을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기조를 조정해야 한다. 비핵화는 남북관계 개선의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비핵화의 채찍을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양보의 길을 터주는 것, 원칙을 제시하는 동시에 시의성을 놓치지 않은 유연한 방안이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다.

▲ 기존의 합의에‘진정성’보여야
남북관계가 앞으로 경색된 국면을 타개할 것인지, 아니면 정체와 퇴보, 진전을 반복할 것인지 당장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남북 당국은 신뢰 회복에 노력을 기울여 말로만의 대화가 아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 노력을 보여준다면 올 해 안으로 민간차원을 중심으로 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특사조문단은 “석자 얼음이 한꺼번에 쉽게 녹겠느냐”는 표현으로 그 동안 냉각되었던 남북관계를 묘사한 바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 남북 당국은 그 동안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남북 현안문제를 하나씩 단계별로 풀어 나가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 가을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한국 정부는 그 동안 제한되었던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을 재개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현대와 북한이 합의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논의도 궤도에 올려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송연설에서 천명한 것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대등하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미 합의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사를 진정성 있게 밝힐 필요가 있다.
운산무산(雲散霧散)이라 했던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계기로 한반도에 구름과 안개가 걷힌 청명한 가을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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