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방학 숙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그토록 마음을 괴롭게 했던 일기이다. 친구들의 일기를 보며 날씨를 베끼고, 한 달의 일기를 몰아 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비밀을 간직하던 시절엔 나만의 기록으로 일기를 쓰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선생님의 검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쓰던 일기이다. 그런데 요즈음, ‘일기’를 쓴 다는 것, 자신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갖는 가치를 절실히 알게 해 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이고도 참혹한 전쟁 속에서 남긴 정희득이라는 젊은 청년이 남긴 『월봉해상록』이 그것이다.
정희득은 함평 사람으로 1597년 9월에 가족과 함께 뱃길로 피난을 가다가 왜적에게 잡혔다. 잡힐 때, 어머니와 형수, 아내와 누이 동생은 바다에 빠져 자결하였고, 그는 일본으로 압송되어 포로 생활을 하다가 1599년 7월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피난에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기록을 남긴다. 『월봉해상록』의 전반부에는 일기가, 후반부에는 시가 실려 전해져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 그의 심정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읽은 나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 조상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갖게 있었다.
‘꿈에 기아(奇兒-정희득의 어린 아들)를 보고, 시름없이 일어나 앉았다. 가엾다, 제 아비라고 부를 사람 없거늘, 어디서 또 엄마라고 불러 볼 것인가. 그 고단함을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하겠다.’ - 1598년 6월 23일
‘이 날은 죽은 아내의 생일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푸른 바다 아득한데 외로운 혼은 어디 있을꼬? 혼자 앉아 서글퍼 두 줄 눈물을 가누지 못하였다. 밤에 부친이 앓으시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온몸이 흠뻑 땀에 젖었다. 부친께서 무슨 병이 있으시기에 꿈결이 이러한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시름이 만 갈래라 그려 낼 수 없다.’ - 1599년 1월 4일
어린 자식과 늙으신 아버지는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임신한 상태의 아내는 피난 길에 자결한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정희득! 본인의 목숨도,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이 낯선 나라에 억류된 채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렇듯 역사 속의 일로만 생각했던 임진왜란은, 일기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슬퍼했지만, 그 분이 남긴 일기를 통해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 확산되는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두려움, 지속되는 불경기 속 취업난 등으로 불우한 2009년 가을,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이때의 나를 기록해 두는 것은 어떨까. 정희득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더라도 미래의 나에게, 열심히 살았던 젊은 날의 나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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