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영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는 민주화의 지도자, 서민과 약자의 대변자, 그리고 인권의 행동가였다. 그는 또 남북한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분단시대를 종료하는 첫 단추를 끼운 평화의 사도였다. 김대중은 우리 정치사에 참으로 위대한 국가 지도자였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거듭된 독재정치 하에서 민주주의는 난망하게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독재에 대항하였던 - 그리고 박해받았던 - 능력있는 대안이었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하는 대안 중에서 대표를 선택하여 권력을 운영하게 한다. 따라서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순조로운 이행에는 대중의 민주화의지와 더불어 언제나 유능하면서도 비혁명적인 지도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우리에게는 김영삼과 더불어 김대중이라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이고 사회통합적인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대중이 승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 실제로는 그가 그들을 충분히 대표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 소외된 지역의, 억압받는 민중의, 그리고 그늘진 소수자들의 정치적 상징으로서 언제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를 받치는 커다란 기둥 하나였다.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자 포용의 원리, 두 가지를 모두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는 이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마무리 짓고 다음 시대로 전진할 수 있는 중대한 진전들이 이루어졌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반대세력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국민통합하에 외환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또 2000년 6.15선언으로 상징되는 남북관계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빨갱이’라는 무고를 냉전수구세력으로부터 수없이 당하면서도 꾸준히 남북평화를 추구해온 김대중이 아니고는, 그리고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그의 역량과 경륜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새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또 김대중 정부는 지식정보사회로 성장하는 비전과 밑바탕을 제공하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로 “복지”국가로의 기초 제도를 도입하여 국가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를 조성하였다.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하며 사형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의 인권 신장도 단연코 김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시대는 영광과 더불어 뚜렷한 한계도 존재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평생 민주주의를 위하여 살아왔지만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정치세력 안에서는 그리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아픈 사실이 있다. 최초의 정권교체는 정말 뜻깊은 위업이었지만 이 목표를 위하여 동원된 수단들 모두가 명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이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열광적인 지지층의 상당부분은 지역주의적 동원과 무관하지 않았다. 김대중의 국민통합 노력에도 냉전보수를 이념으로 하는 반대세력은 똘똘 뭉쳐 화합보다는 증오를 증폭하였다. 그는 서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했지만 집권을 위하여 늘 보수 기득권층에 구애했고, 대통령으로서 현실 정책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김대중 집권의 환경적 도우미였던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그로 하여금 신자유주의를 본격화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점도 아쉬울 뿐이다. 따라서 그의 찬란한 인생의 업적과는 별도로 김대중은 또한 오늘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에 책임을 공유하는 현실 정치의 정파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서거는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물리적 종료를 의미한다. ‘삼김시대’라고 불리는 구래의 봉건적 한국 정치 - 상명하달의 보스정치 - 또한 마감하였다. 물론 아직 그 잔영이 여전히 깊게 드리우고 있지만. 김대중정부의 말미였던 2002년부터 이미 우리는 국민참여경선을 포함한 새로운 정당/선거정치를 시도해 보았다. 지난 노무현정부는 그 산물이며 동시에 실험의 실패작이기도 했다. 사실 그 실패의 여파가 현 이명박 정부의 등장 배경이었으며, 지금 나타나고 있는 민주/인권/평화 전 영역의 상당한 퇴보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는 우리가 이제껏 이루어온 모두를 돌아보고 그 가치를 재평가하며 나아갈 길을 다시 비추어보는 전기가 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일방주의, 그리고 더 이상의 권위주의화는 이 두 죽음으로 상당한 장애물을 만났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관건은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을 포함한 여러 야당들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오직 ‘경쟁적’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이야말로 제도정치를 부활시키고 소모적인 극한 대결과 거리의 정치를 완화시킬 수 있는 길이다. 중장기적으로 보자면 김대통령의 서거는 야권내에서 차세대 지도자와 차세대 대안 정당의 자리를 점하기 위한 백가쟁명의 갈등을 불러 올 것이다. 이 때 핵심은 어떠한 콘텐츠의 지도자일 것인가와 어떠한 방식으로 유권자들과 소통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즉 비전과 (당내 민주주의 방식을 포함한)조직이 논의의 중심이다. 김대중이 이런 면에 있어서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세력의 대척점에 있었음은 다시 상기되어야 한다. 오늘 출현할 ‘40대 기수’는 과연 어떤 국가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어떠한 지지층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서민을 위하는 정치,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로 유권자의 참여를 증진하는 정치의 방향이 시대정신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김대중의 유산과 연관된다!
김대통령의 서거가 곧바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영역은 남북한 평화의 증진이다. 현 정부가 수구보수적 이념 접근을 취함으로써 가장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이제 클린턴 방북과 미국 기자 석방, 현정은 방북과 현대아산과의 합의 등을 통하여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시점에 고인이 돌아가셨고, 따라서 북의 조문외교로부터 적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김대통령의 서거와 이에 따른 북한의 움직임, 그리고 우리 국민의 ‘햇볕정책’의 재평가를 통하여 실용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패배시키는 셈이다! 물론 문제의 최종 결정권은 현 정부가 쥐고 있다. 그 결과도 이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지만.
김대중은 민주, 인권, 평화의 큰 산이다. 그를 기리며 우리의 앞날을 다시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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