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억년 전에 불덩이로 탄생한 지구. 이 지구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생명이 탄생하였고, 또 진화해왔다. 그 동안 수 많은 생물 종들이 한 시대를 지배하다가 사라졌다. 삼엽충이 그러했고, 암모나이트가 그러했고, 공룡이 그러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마침내 우리 인류가 이 지구에 출현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인류의 시작은 설치류와 같은 아주 작은 포유류이었다고 한다. 이 보잘 것 없었던, 다른 대형동물을 피해 숨어 살아야했던, 나약하기 짝이 없었던 이 동물이 지금은 지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절대 권력의 지배자가 되었다.

인류는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머리를 사용할 줄 알기에 이 지구를 마음대로 개조하여 인간이 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으로 바꾸고자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이 나름의 결실을 맺어 이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려고 하는 수준까지 과학이 발달하였다. 과히 신의 영역까지 인간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 과학문명의 발달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과학 이기의 발달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오히려 현대 문명 속의 생활이란 것이 진정한 사람의 행복을 찾아주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과학만능주의, 경제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가 팽배한 지금 인문학, 철학의 쇠퇴, 기피는 너무나 아쉬운 감이 있다.

우리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해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본다. 혹자는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개선을 강조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경제에 의한 지나친 빈익빈 부익부를 경계하기도 하고, 남녀 성차별의 철폐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거대 담론을 논하기 이전에 사회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항상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신적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남의 탓을 하기 이전에 나의 잘못은 없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자. 우리 속담에도 ‘남의 눈 속의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인간의 도덕성 회복이 가장 중요한 일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지구상에서 생명이 진화해왔고, 인류도 진화해 왔는데, 인성은 퇴보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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