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면 5·18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5월이지만 신군부의 독재에 항거하여 궐기했던 광주 시민들의 가슴에 다가오는 5월은 다른 지역과는 많이 다르다. 외부 침략은 물론 내부의 강제 행위로부터 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는 국가에 의해 억압된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5·18은 이제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승격되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아직도 역사 속에 확고한 위치를 매김했다고 보아지지는 않는다. 80년 당시 광주 시민들이 외쳤던 핵심에 대한 개념 정립이 뚜렷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5·18의 도화선은 당시 호남을 대표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속이었지만,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었던 국가의 강제적 자원배분에 따른 경제적 자유의 박탈로부터 연유된 복합적인 사건이다. 개발 연대에 가용(可用)했던 자원을 집적한 정부가 경부(京釜)를 축으로 하는 지역에 집중 투자하는 과정에서 호남의 경제적 소외감이 누적됐고, 여기에 정치적 소외감이 더해져 발발했기 때문이다. 개발 정책이 효율에 기초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호남으로서는 의당 느낄 수 있는 소외감이었다. 5·18이 남긴 정치·경제·사회적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개인의 자유가 지고의 가치로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유는 내 주먹을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있지만, 그 주먹이 다른 사람의 턱 앞에서는 반드시 멈춰야 하는 자유를 의미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5·18을 세계적인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자유에 대한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5·18의 정체성을 자유로 인식하면 후속 작업의 내용은 뚜렷해진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하여 세계적 민중운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과의 차별성을 추출하여, 여기에 호남인이 추구했던 자유의 고귀함을 더한다면 ‘세계의 자유 정신’의 반열에 우뚝 세울 수 있다.

구체적인 과제로서는 자유 사회의 운용 근간이 되는 사유 재산권,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박애 등의 정치·경제·문화적 이슈는 물론, 5·18당시 군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징병제와 지원제에 대한 연구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5·18정신의 정점에 자유의 가치를 매김하여 관련 과제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의 소임이기도 하다. 5·18의 원인(遠因)을 호남인의 재산권 침해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는 사유 재산권이라는 사실은 특히 강조돼야 한다. 사유 재산권이 없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의(正義)나 평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언론 매체가 국가 소유라면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잘 처진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사유 재산권을 바탕으로 자유를 추구했던 사회는 평등도 훨씬 더 잘 달성할 수 있었지만, 평등을 추구했던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재산권은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한 사회의 운행에 있어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함을 뜻한다. 자유에 대한 성찰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별관의 철거 여부를 둘러싼 이슈는 물론, 5·18 관련 제반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지적으로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고, 관련 단체들을 대립이 아닌 토론과 논의의 장으로 인도할 것이다. 자유를 외쳤던 광주의 5.18이 광주만이 아닌,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의 정신으로 승화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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