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외’와 ‘소수자’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소외’ 시키곤 한다. 나 역시도 소외당하는 사람들이나 소수자들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2008년 겨울, 필리핀과 태국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게이와 트랜스젠더가 정말 많았다. 필리핀에서는 분명히 몸은 남성인데, 여성인 것처럼 치마를 입고 다니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거나 여성스러운(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적 발언이지만) 행동을 하기도 했다. 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이는 물론, 트랜스젠더가 많기로 ‘소문난’ 국가가 바로 태국인데, ‘트랜스젠더 쇼’가 관광 상품화 되어있을 정도다. 태국의 유명한 여행자 거리를 걸으면서 이런 말도 들었다. 술에 만취한 남자가 술집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날 아침 보니, ‘그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고. 조금은 우습고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그 정도로 태국에 트랜스젠더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나는 ‘소외’와 ‘소수자’라는 말을 먼저 떠올리기 이전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아직 내 안에 ‘소외’와 ‘소수자’라는 말을 내재시키지 못 하고,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난 3월 31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법학전문대학원 국제회의실에서 있었던 ‘성소수자와 소외’ 학술대회를 통해 그들을 가슴속에 ‘담고’, 나아가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총 4개의 주제발표-‘성소수자 문학의 동향(윤수종·전남대 사회학과)’, ‘트랜스젠더리즘과 성별공성(안옥선·순천대 철학과)’, ‘여성 성소수자의 현실과 차별(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성소수자의 법적쟁점과 과제(장서연·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와 주제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으로 이루어졌다. 세 번째 발제자인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더 큰 차별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이 세계는 보편적으로 ‘이성애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당연하게 행동하는 것들이 ‘동성애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불편하게 보이고, 차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또한 더욱 심각한 것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 스스로의 ‘자기 검열’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행동하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대표는 이를 ‘보이지 않는 낙인’이라고 설명했다. “동성애자임을 사회에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감당하게 될 무언의 폭력, 차별, 소외, 격리 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거짓된 이중적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회적 장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법제도, 사회 시스템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마지막 발제자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의 발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장 변호사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처하게 되는 범죄와 사법구제절차의 문제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해야 하는 이유, 동성애자의 가족구성권 문제 및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 대한 문제들과 과제’를 현실의 성소수자에 대한 변론과정에서 있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짚어보았다.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법이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차별에 대해 금지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차별을 받은 성소수자들이 구제받고자 하는 순간, 또 다른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과정에 있어 수사관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2차 피해는 물론, 그들의 성정체성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 또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 내용’과 그에 따른 ‘처벌 규정’이 명문화되어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차별의 대상’에 헌법상에는 아직까지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에는 두 가지 가치의 충돌이 있었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종교적으로 동성애나, 성을 바꾸는 것 등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와 성적소수자들의 성적지향이 충돌했던 것이다. 국가조찬기도회, 성시화운동본부, 한기총과 KNCC 등으로 이루어진 국회 내 의회선교연합이 로비를 통해 ‘성적 지향 차별 대상 포함 법안’ 통과를 저지했고, 결국 ‘성적 지향’은 차별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 했다고 한다.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법적으로는 차별이 아닌 것이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엄연히 차별에 포함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권고적 효력만 가질 뿐 실질적인 효력은 발휘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차별의 대상에 ‘성적 지향’을 포함하지 않았음은 물론, 동성커플의 가족구성원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역시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왔다.

▲ 차별과 억압속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할 법과 제도적 장치는 불가능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의 사정을 참고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동성애커플의 경우, 일반적인 이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이 사랑을 하고 사랑이 깊어지면 함께 살고 싶은 것(결혼)이 당연할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너무나 간과해왔다. ‘일반적’이고, ‘익숙한 것’에만 눈을 돌렸지, ‘조금은 특별하고 낯선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왔다. 동성커플의 가족구성원과 관련된 법적 문제는 다양하다. 일반 이성애자 커플이 결혼해서 겪는 문제들이 똑같이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동성커플이 이 수많은 ‘가족’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인 방안은 없다. 애초부터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커플이 가족을 이룬 후에도 그들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법도 적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씁쓸했다. 그리고 또한 이를 발표하는 발제자의 표정도 씁쓸해보였다.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였던 법마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니.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구 밖 다른 별로 ‘이민’을 가야 하는 걸까? 익히 알고들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동성커플을 인정하고, 동성 간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면 파격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한 한국에서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또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자꾸 자꾸 보자. 소수자에게로 눈을 돌린, 그들의 입장에서 법적 장치를 마련해준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의 인식이 먼저 바뀔 수 없다면, 모순적이지만 법을 먼저 바꾸고 인식을 나중에라도 천천히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참, 해외로 눈을 돌리기 전에 내 주변에 있는, 또는 있을지 모르는 성소수자들에게 먼저 눈을 돌려보자.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 아니, 더 아프고 구석진 곳, 벼랑 끝에 있는 힘겨운 사람들이다. 그들과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사회적 시스템과 법적 제도를 마련해보자. 남자와 남자가 팔짱 끼고 다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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