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월 4일부터 8주간 외국어완전정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필리핀을 다녀왔다. 다른 친구들처럼 어학능력을 향상시키려고 참가한 것이긴 했지만 사실 내게는 더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나는 08년도에 전남대학교 경영학부로 편입학했다. 이전 05년도에는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를 졸업했고 사회에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느꼈기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대학을 선택한 기준에는 경제적인 요건이 많이 작용했다. 2년 동안 학업을 멈추지 않고 유지하려면 내 고향인 광주에서 국공립대학교인 전남대학교를 다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별 기대 없이 전남대에 들어온 나는 한 해를 방황만 하다 보냈다. 뜨내기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내게 믿고 의지할만한 선배라던가 마음에 맞는 친구, 더욱이 내가 무언가 모범을 보여야 할 후배가 생길 리가 없었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와있는 듯 불편함 속에서 공부 역시 잘될 턱이 없었다.
이렇게 속 시끄러운 사정을 안고 방학 동안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적어 넣자는 안일한 마음으로 떠나게 된 필리핀. 나는 그곳에서 내가 모르던 새로운 전남대생들을 만났다.
새로운 나라에 가게 되면 그 낯섦 때문에 두렵지만 동시에 자유로움도 느끼게 된다.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남대생들은 한 어학원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밤 문화에 빠져서 학원에 자주 빠지는 학생들도 있었고, 밖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학원과 기숙사에서만 생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남대 학생들은 달랐다. 어디에서도 돋보이는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항상 적극적이었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누군가가 내게 와서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전남대생들은 어학원에서 영어만 사용하도록 학교 측과 약속하고 왔나요?”
수업이 끝나고도, 기숙사에 가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전남대생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 뜻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뚜껑이 없는 더러운 변기, 자꾸 권하는 거부감이 드는 음식(예를 들면 발롯 : 부화일에 가까워진 오리알), 자꾸만 제자리를 맴도는 택시기사... 분명히 우리를 짜증나고 당황하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되도록 많은 것을 직접 해보고 현지인들에게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현명하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전남대 학생들은 분명 용감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었다. 우연의 사고로 우리가 있던 어학원 기숙사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런 비상 상항 속에서 여학생들의 방 쪽으로 불길이 향해졌다. 전남대 남학생들은 망설이지 않고 아직 방에 남겨진 여학생들의 물품을 밖으로 옮겼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 방에 거주하던 여학생들은 연수를 채 마치지 못한 채, 끔찍한 기억만을 안고 귀국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인상을 남겼던 어학연수는 내게 ‘전남대 학생 관찰기 또는 전남대에 대한 편견 없애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감히 전남대생이라면 타의에 의해서 학교에 들어와 무기력하거나 피해의식으로만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필리핀에서 만났던 전남대 친구들은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결정할 만큼 당찼고 남들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편입학을 할 정도로 절실하게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기를 바랐으면서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고. 이런 사실을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나는 관찰기를 이쯤에서 마치고 마지막 1년을 전남대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체험해보려 한다. 이제 진심으로 전남대생으로서 만족하고 있는 나는 아마 올해가 끝나기 전에 만족스러운 체험기도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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