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이 울린다. 숙면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비몽사몽으로 전해들은 소식에 잠이 홀딱 깨는 순간이었다. 만 2년을 넘게 다닌 학교이건만 그 흔한 교양수업에서조차 단 한 번도 뵙지 못한, 성함도 처음 듣는 분이셨다. 딱히 연줄이 닿는 것도 아니었건만 왜 그렇게도 마음이 애잔하던지…. 20년을 2년처럼 매일같이 자신의 일부인양 자전거를 이끌고 오고가신 그 통근길에서 한 운전자가 저지른 찰나의 방심에 영면의 길을 가셨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이 안타까운 소식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어렵지 않게 유명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또다시 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가 안타까운 죽음 앞에 애도를 표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를 죽음, 아니 만물에 숙명처럼 존재하는 종말. 천상병 시인은 어느 시에서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 했다. 어쩌면 이 문구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외로움이 가시고 꽃이 필 때는 죽은 다음일지도 모른다. 살아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처럼 살다 가면 그만일지도 모르는 법. 다만 저마다 남기고 간 삶의 향기에 남겨진 자가 얼마나 취하느냐는 조금 다르다. 얼마 안 가 그 향기가 온데간데 없이 달아날 수도, 두고두고 사방을 은은하게 풍길 수도 있다.
그대는 어떤 향기를 남기고 싶은가? 인생의 한 쿼터를 지나고 있는 그대들이여, 부디 그대의 삶이 남기고 간 향기에 취해버릴 만큼 진한 향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바란다. 그대 영혼이 그 향기에 취해버릴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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