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위해 일 년 동안 버클리대학에서 머물렀다. 돌이켜보니 캠퍼스의 울창한 숲길을 조석으로 걸으며 사색하고 휴식을 취했던 많은 시간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다만 내가 처음부터 좋아서 아침 저녁으로 숲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된 데는 대학의 불편한 주차장이 그 원인을 제공했으니 일종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버클리에 도착하여 숙소를 도시 외곽의 먼 곳으로 잡았기에 학교는 부득이 자동차를 이용해 다니려고 대학에 주차권을 신청했다. 교직원이 대학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비용은 한 달에 150불. 그런데 배정된 주차장이 캠퍼스 남쪽에서 한 블록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상당한 거리를 걷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매달 5천원만을 내고 연구실 바로 코 앞에 주차를 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주차료가 30배나 비싸고, 또한 걸어야하는 거리도 만만치 않아 불만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버클리대학의 주차장은 가능한 한 모두 외곽으로 분산 배치하여 학교 안의 주차장은 최소화하고, 주차관리체계도 잘 정비하여 교내의 길로 다니는 자동차가 거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대학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교통 혼잡과 공기오염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지성들이 모여 있는 대학에서의 비싼 주차의 요금과 불편한 위치는 당연히 감수해야하는 대가라는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려 150여 만 평에 달하는 버클리대의 캠퍼스는 푸르름과 그늘이 가득한 그린캠퍼스로 남았다.
  일 년을 지내는 동안 교정을 걷는 일이, 처음의 불편함에서 점차 즐거운 일과로 변모해 감을 느끼게 되었다. 학교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한국학연구소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사회과학서적이 많은 모핏도서관이나 인류학과로 가는 길을 걷노라면 수백 년 된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의 은은한 나무 향과, 언제나 한국의 가을 같은 버클리의 날씨가 상쾌한 기분을 더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오래 앉아있다 눈이라도 피곤해질 때면, 나는 그저 조용히 밖으로 나와 숲길을 걷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것을 즐겼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거나 쉬다 보면 머리가 다시 맑아지고 생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러한 녹색의 환경이 대학에서 두뇌들이 연구와 사색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을까? 그 가치를 환산해 본다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그린캠퍼스의 가치에 대해 보다 심각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연찮게도 버클리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였고, 노벨상수상자에게는 주차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주는 관례가 있어 흥미로웠다. 2006년 기준으로 모두 6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버클리대에서 학위를 받았거나, 연구한 경력이 있고, 그 중 20명이 버클리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작년 현재 8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교수로 있었으므로, 내가 버클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8명의 교수를 빼고는 모두 주차문제로 약간 불편을 겪는 대신, 나무가 울창한 교정을 걸으며 녹색을 만끽하는 보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2007년 12월에는 전년도에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인 스무트교수가 그가 받은 상금을 대학의 연구소에 기증하는 훈훈한 뉴스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아는 동료교수 한분이 아마 스무트교수가 가장 비싼 주차요금을 낸 사람일 것이라는 농담을 해 주위를 웃겼다. 아무튼 버클리에 머무는 동안 나는 주차문제로 나무를 새롭게 발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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