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 나는 “군대가서 실컷 고생하고 철 좀 들어 와라”하는 생각을 하며 동생이 군대에 가는 것을 반겼다. 군대는 가서 버릇을 고치는 곳이지 군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우리는 감히 군대를 거부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안 간다고 한다면 정말 큰일 날 소리이다. 미국시민권을 얻어 군대를 안 간 유승준은 우리나라에서 추방되다시피 됐으며 아직도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 물론 부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은 잘못이다.

비록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병역을 거부할 권리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제도는 대부분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곳 이라는 생각이 모두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름 앞에서 개인의 자유는 사치일 뿐이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자유를 반납하고 질서와 복종을 강요하는 군대, 오직 군대만의 모습뿐일까? 파시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억누르고 있었고 우리는 오랫동안 꾸준히 파시즘에 젖어있었다. 파시즘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에게 일침을 가했던 책 『우리안의 파시즘』을 소개해주고 싶다.

파시즘은 어느새 우리 안에 녹아있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는 파시즘은 연고주의, 학벌, 지연을 낳고 민족,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 권력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전체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면 사회에서 이단아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단아는 2008년 촛불로 거듭난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라고 불리지만,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정부가 정책들을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에 국민들이 촛불을 켠 것이 몇 달 전 이야기다. 예전보다 국민들은 자유롭게 인터넷에서 공론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촛불시위를 그저 자신의 의견을 가로막는 방해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촛불시위 인터넷카페 운영자들에게 보복수사를 하였다. 또한 한 연예인의 죽음을 핑계로 ‘사이버모욕죄’를 통해서 인터넷에서 조차 표현의 자율성을 잠식시키려고 하였다. 생각을 갇히게 하여 자신들의 정책에 군소리 없이 무조건 수용을 강요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조하는 파시즘. 그 파시즘으로 인해 비정규직노동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등 사회의 소수이자 약자들은 다수를 위해 소외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변질된 파시즘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희생은 상위 1%의 잘사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상위층 소수만을 위하여 다수의 국민을 외면하는 정책들을 만들고 있다. 1960,70년대 우리는 무조건적인 수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우리는 외칠 수 있다. 비판할 수 있다. 그 여름 대한민국을 활활 타오르던 촛불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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