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우리학생회’가 탄생했다. 몇 년 째 ‘우리학생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학생회’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왜 작년에도 ‘우리학생회’고 올해도 ‘우리학생회’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우리학생회’가 정당도 아닌데 매년 ‘우리학생회 소속’으로 나오는 것이 ‘어른들 정치판’을 보듯 신기했다. 그 후로 나는 ‘총학생회’에 대해 관심이 있어도 없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내 스스로도 ‘총학생회’의 대표성과 총학생회가 추진하는 사업들에 대한 평가, 총학생회의 이념성 등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우리’라는 말에 담긴 ‘짙은 폭력성’과 ‘따뜻함’을 묶을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우리’를 참으로 헷갈리게 만든다. 어디 까지가 ‘우리’인가. 또한 ‘우리’라고 ‘우리’를 묶음으로써 파생되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앞서 ‘우리’라는 말에 ‘짙은 폭력성’이 담겨있다고 했다. 총학생회에 대해 우호적인 학생들이 대다수일 수도 있고, 총학생회는 ‘2만 학우’ 모두를 ‘우리’ 안에 넣고 싶고, ‘우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총학생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아니, 소수의 학생이겠지만 아예 총학생회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다. 또한 총학생회에 ‘적’으로 분류되는, 총학생회의 통일 공약과 사업 등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이들까지 ‘우리’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우리학생회’라는 말에서 ‘우리’는 ‘우리를 지향하는’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학생회’는 3년 째 학내에서 ‘학생 대표’로서 ‘2만 학우’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래서 해를 거듭할수록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테다. 물론 매년 선거가 단선으로 치러지는 데에는 전남대 학생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비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하지만 ‘우리학생회’라는 명목으로 매년 ‘바톤 터치’ 하는 식의 총학 선거, 매년 비슷한 공약들, 비슷비슷한 사업들은 자칫 ‘우리’학생회를 우리‘학생회’에 안에 고립될 수도 있게 만든다. ‘우리’학생회가 우리‘학생회’에서 탈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안에 담긴 ‘짙은 폭력성’ 보다는 ‘우리’안에 담긴 따뜻함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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