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약산 섬마을 고등학교 3학년은 단 한 반, 그 안에는 학생이 모두 열 네명이란다. 그 중 할머니 밑에서 사는 한 여고생은 S대 수시 1차 합격을 해놓은 상태인데, 말이 1차 합격이지 그 섬뿐 만이 아니라 군단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인지라 그것만으로도 교문엔 플래카드가 걸리고 고3 담임인 내 친구는 주변의 칭찬에 기쁨 반, 걱정 반…지금 그렇단다. 도시의 흔한 학원도 없는 섬에서 독하게 공부해내는 그 학생의 의지 뒤엔 담임인 내 친구의 다독거림과 배려가 컸음을 잘 알고 있다.
  혼자서 잘해 내는 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 담임이 필요한 것을 선물해주고 싶어하는데도 그 아이는 극구 사양을 한단다. “그럼 넌 뭘 좋아하는데…?”, “오리고기요…” 혼자만 따로 밥 사주는 것이 부모 없이 사는 그 아이에게 동정으로 비춰질까봐 반학생들 모두를 불러 오리고기 회식을 한다는데, 대신 서로가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야간자습 시간만큼은 조용한 분위기로 모두가 그 아이를 도와준다는 약속이었다한다. 그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 한 턱 쏜다는 담임의 화끈한 전체 회식임을 알고있을 것이다.
  다른 두 남학생은 매일 헤지고 헤진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한단다. 물론 그 애들 역시 열악한 환경인지라 겨우 학교를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정도란다.
  내 친구는 그 아이들에게 교복 사이즈를 알아오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고, 한 아이는 좋아라하며 다음 날 곧바로 사이즈가 적힌 쪽지를 내밀더란다. 그러나 다른 한 아이는 내일, 내일, 그렇게 미루며 끝까지 가르쳐주질 않기에 베푸는 것이 그 아이에게는 도리어 상처일 수가 있기에 그냥 그렇게 더 이상 묻지 않고 지나쳐주었단다.
  대신 어떤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해보라는 권유와 함께 그 아이의 멋진 미래에 대한 그림을 설명해주었더니 어느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남학생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음 날 담임을 찾아와 그러더란다. “선생님! 저 그 시험 볼래요. 새 교복 대신 책 좀 사주세요” 그 아이가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그 시험을 준비를 하려면 몇 권의 책이 더 필요하건만 만원 조금 웃도는 기본서 한 권만을 고르고선 그거면 된다고 ‘너무 비싸서요…’하며 사양하더란다. 다른 부록들을 굳이 마다하는 아이를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히고서는 검색을 하게하고 다섯 권 전집으로 인터넷 책주문을 해주었단다. “얌마! 선생님은 쏠 때는 팍팍 쏜다!” 그렇게 둘이 마주보며 배시시 웃었단다.
  나도 시골 학교 선생님이면 아마도 지금의 내 친구와 같은 선생님이 됐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얼마 전에 받은 원고료 십만원을 그 친구에게 입금하고 메일을 남겼다. ‘네가 내 친구인 것이 너무 좋다. 학생들은 네 마음을 알까나? 내 친구가 그런 멋진 스승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도록, 나의 친구를 위해서도, 그 꿈나무들을 위해서도 섬마을 아이들에게 피자를 쏜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수능시험 때까지 모두 잘 버티라고 피자 대신 고기를 먹이고 있단다. 얼굴도 모르는 담임선생 친구의 원고료 십만원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가슴 속에 채워졌다.
  유년시절 마당끝 한 구석에 있는 화장실에는 붉은 혹은 푸른빛의 5W의 알전구로 전기를 아껴썼다. 한밤 중에는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종종 그 불도 끄지 않고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가 어김없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는데, 문득 요즘의 커다란 형광등을 보면서 대학생활이 그렇게 알전구처럼 조그맣게 시작해서 점점 커지는 내 삶의 형광등을 확보해 가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멋진 스승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치고 삐뚤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느 섬마을 선생님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에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작은 알전구 같은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삶 속에 어둠을 밝게 헤쳐가도록 해 준 깊은 인연을 지켜가는 일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 또한 이 가을에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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