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민주화의 터전’ 전남대부터 ‘易地思之’ 자세로 문제 해결나서자
  온갖 품팔이가 8백70만에 이르는 가운데, 비정규직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에 지쳐 여론과 언론도 풀죽었다. 전남대도 값싼 철 품팔이가 많다. 나도 오랜만에 전임이 되었고, 차라리 굶겠다는 딸깍발이 정신으로 품팔이는 서너 철밖에 안했지만, 그 설움은 절실히 느꼈기에 가슴 아린 울림이 크다. 예산과 국립대의 테두리가 뚜렷하지만, 정의와 민주화의 터전인 전남대부터 ‘역지사지’로 고통을 분담하는 사랑을 적극 선창하여, 자체 실행할 수 있는 곳부터 최소한의 생존권과 존엄을 존중하자!

1. 신분지위를 전임교수와 똑같이 보장하는 건 어렵지만, ‘겸임교수’제도와 호칭을 적극 활용하자. 겸임교수란 본래 다른 전업 전문가의 지식경험을 명예롭게 빌려 쓰는 제도지만, 오로지 ‘학문연구’가 전업인 선비를 겸임교수로 예우해선 안 될까? 겸임교수 신분증을 주면 철도운임 할인 혜택도 따를 것이다.


2. 강사료는 국립대가 높은 편이나, 다른 수당이 없고 방학 때 무급이라 차별이요 고난이다. 전에 성공회대인가 방학 중에 강사료의 절반을 준다기에 감탄했다. 우리도 방학 중 강사료의 절반 지급부터 시작하자. 한 학기 15주에 기말 성적평가를 보태, 4주씩 넉달 강사료를 주고 두달 방학은 절반씩 준다. 전업자는 뺀다.


3. 계절학기는 전임교수만 여는데, 강사료 아끼기로 읽힌다. 교수는 계절학기를 초과강의 수당으로 주니 액수가 적어 개설과목이 적다. 계절학기가 필요하다면, 철 품팔이 강사도 개설할 수 있도록 요건을 합리화하자. 계절학기 강사는 방학 중 절반지급을 뺀다.

▲ 우리 대학 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원들이 지난달 열렸던 국회 국정감사때 본부앞에서 비정규직 교수 처우 개선을 위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전대신문 자료사진)

4. 휴가비는 못 주더라도, 논문 게재료나 설과 추석 때 조촐한 선물, 강사 공용 연구휴식 공간을 배려하자.

5. 문제는 예산인데, 정규교수도 다른 국립대에 뒤쳐져 아우성이지만, 호남지역 인구와 생산력을 감안하고, 대공황과 IMF 때를 버금가는 국내외 경제사정을 직시한다면, 이젠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난과 고통을 함께 나눌 각오가 절실하다. 시대 흐름과 역사 정신을 읽을 줄 아는 지혜와 자비가 요긴하다. 묵자는 절약하면 경상지출의 절반은 줄일 수 있다고 ‘절검의 미덕’을 역설했다. 이 명제는 나도 서울대 기숙사 자동의 회계를 1년간 맡아 직접 실천으로 증명해 봤다. 열쇠는 공금을 자기 돈처럼 아껴 쓰면 된다.
그런 정신으로 학교예산 중 불요불급한 경비를 되도록 줄이자.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공술 공밥이 절대 없다. 전기와 종이 등 자원절약도 적극 행하자. 세콤 보안체제로 바뀌면서 수위가 사라지고, 빈 강의실이나 화장실에 밤새 불 켜진 경우가 많다. 새벽과 저녁 테니스장 야간조명이 찬란하던데, 몇 사람 위해 전력낭비가 너무도 많다. 쓸데없는 시설공사로 퍼붓는 예산낭비도 아낄 때다. ‘후광 김대중 학술상’도 꼭 필요하고 투자가치가 있는지 다시 심사숙고해야 한다. 수출이 안돼 내수를 늘릴 판에, 별 실익 없는 해외홍보는 절제해야 한다. 환율 높아 지출이 엄청 늘 텐데! 도둑 맞을 건 있어도 형제 줄 건 없다더니, 빛 좋은 개살구 되는 건 아닌지?

6. 그래도 모자라고 또 필요하다면, 교수들의 봉급이나 수당을 묶어 짜는 용기도 내야 한다. 어려운 때와 지역형편을 고려해 등록금은 올리지 말자. 호남과 빛고을이 어떤 곳인가? 예로부터 전국의 곡창이요 젖줄이다. 백두대간과 정맥을 모두 완주한 어느 분의 감상을 얼마 전에 봤는데, 경상도는 사람들이 거칠고 호남은 가난해도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게 인상 깊었다고 한다. 다른 대학과 비교해 상대적 빈곤을 하소연하기 전에, 우리와 똑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료 후배 품팔이꾼의 서글픔을 헤아리는 따스한 인정이 참말 아쉽다. 내가 운 좋고 복이 많아 한번 교수 된 인연으로 평생 편안히 지낼 수 있다고, 명색이 만물의 영장이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깡그리 잊는단 말인가? ‘내 배 부르니 종 밥 짓지 말라’는 건 아닌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감기 들기 쉽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농과 빈부의 격차가 클수록, 우리 사회와 구성원도 ‘감기’ 들기 쉽다. 건강하고 복덕 많아, 그까짓 날씨 변덕은 아랑곳하지 않을지 모르나, 누구도 생로병사와 인과응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복덕이 다하면 언젠가는 쪽박 차고 동냥아치가 될 수도 있다. 불교의 삼세인과(三世因果)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따르면, 사람도 복을 탕진하면 내생에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복덕을 아껴 어려운 이웃과 나눔으로써, 내생에 복덕의 씨앗으로 확대재생산하라고 권한다.
  얼마 전 전대 품팔이 네 분과 함께 하루 내 동행하면서, 우호관계인데도 말없는 원기(怨氣)가 은근히 거세게 풍김을 느꼈다. 며칠은 그 기운에 중독 당했다. 옛 속담에 ‘온 집안이 잔치에 흥겨워도, 한 구석에 훌쩍이는 사람 하나 있으면, 온 판이 깨지고 다같이 언짢아진다’고 한다. 또 ‘한 아낙이 원한을 품어도 오뉴월에 서리가 날린다(一婦含怨, 六月飛霜.)’는 속담도 전한다. 하물며 수백 명의 불만이 폭발하고, 전국의 9백만 품팔이꾼의 원기가 하늘에 사무치면 어찌 될까? 2% 부자만을 위한 편집광적인 막무가내 정치판을 보면, 한겨레의 앞날이 끔찍하다. 정규리그도 자기네 잔치판만 챙기면 정치판과 다를 게 뭔가? 우리부터라도 원기와 살기를 누그러뜨려, 화해로 상생하는 슬기와 자비를 펼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정의의 사기(士氣)와 민주화의 성화를 높이 치켜든 빛고을 성령(聖靈)을 따르는 천직(天職)사명이 아닐까?
  9백만 품팔이의 생존권을 위해 정의의 불씨 지피는 마음으로, 전남대 품팔이의 힘든 삶을 조금 보살피자! 강단의 교사가 평화롭고 활기차야, 배우는 학생도 밝고 힘차게 자란다. 내년 3월 문 열기 위해 첫 신입생을 뽑는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은, 5·18의 상징성도 살려 ‘공익인권’을 특성화로 내세운다. 로스쿨의 힘찬 출발과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서도, 품팔이 강사의 인권과 형평정의를 함께 보살피는 따스한 배려는, 틀림없이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선익으로 되돌아오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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