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계정민 교수‘근대 영국에서의 동성애’ 강연

  몇 년 전 탤런트 홍석천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선언한 이후 쏟아진 사람들의 시선과 위협으로 일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리수가 각광받던 것과는 달리 홍석천은 모든 공중파에서 출연을 거부당했고 하고 있던 사업들도 위기에 봉착했으며 최근에 들어서야 다시 공중파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이렇게 성적 소수자들이 언급되는 것조차 피하려 했던 한국 방송가였지만 요즘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동성애 코드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다. 오히려 동성애 코드가 들어가지 않은 작품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왕의 남자, 커피 프린스 1호점, 주몽 등에서 근근히 표현되던 동성애는 마침내 올해 들어 그 꽃을 피운다. ‘바람의 화원’은 드라마와 영화(미인도) 모두 동성애를 극을 관통하는 코드로 삼아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고 ‘소년, 소년을 만나다’와 극장가의 돌풍을 몰고 있는 ‘앤티크’까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남자와 뒹구는 히스 레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새 한국은 동성애 속에 빠진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도 동성애라는 단어의 저변에 숨어 있는 경계심의 기원을 알아볼 기회가 될 강연이 지난 10일 인문대 학술회의실에서 있었다.


▲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서정적으로 다뤄 동성애 단체로부터 최우수 영화로 선정된 故 히스 레저 주연의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는 단순한 성적 취향이 아니다

  현재 서구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처럼 보인다. 드라마 ‘스킨스’로 개방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영국만 보더라도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하고 교회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에 대비한 지침을 내놓는 등 동성애에 대해서 관대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역시 최근의 것으로 현대까지도 동성애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했다.
  ‘근대 영국에서의 동성애’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계정민 교수(계명대·영미소설)는 근대 영국의 문학 텍스트와 각종 문건들을 통해 드러난 영국의 동성애 담론을 발표했다. 계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동성애는 단순한 성적 지향이 아닌 계급, 종교, 젠더, 민족과 밀접하게 연관된 구성물로 복합, 중층적인 담론을 생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각종 분야에서 ‘수월성’을 가진 최상위 계급의 ‘세련된 악덕’이었고 대중의 모방대상이었다. 그러나 유대민족에게 있어서는 타민족과 여호와의 백성인 유대인을 구별 짓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졌고 서구사회의 동성애 혐오는 이러한 유대-기독교가 생산한 반동성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세 이후 영국사회에 기독교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동성애자들로 인해 멸망한 소돔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 속에 각인시켰고 영국 의회는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규정했다. 근대 영국사회에서의 동성애는 성서에 입각한 혐오의 대상에서 의학에 근거한 질병, 감염의 개념 안에서 재정의된다. 즉 정액이 남성에 의해 흡입될 경우 신체 내에서 다른 목적으로 변형되어 흡혈귀 비슷한 괴물이 되고 접촉하는 다른 남성을 다른 흡혈귀로 만든다는 설이 유포되는 등 종교적인 이유에서 근대의학에 근거한 담론으로 변모한다. 홍석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동성애자들은 추악한 범죄자로 인식되는 검열의 대상이었던 것과는 달리 여성 동성애자들은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인식마저 있었다. 그들은 남성들과 달리 법률적, 사회적 처벌로부터 제외되고 문학텍스트 내에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되었으나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통제와 훈육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 영국에서 동성애 텍스트를 실명으로 출판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페니 힐’에서는 매춘 여성들마저 동성애를 자신들의 일을 빼앗아 가는 범죄로 생각하고 “여성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여성을 흉내내는 끔찍한 모순”이라고 비난한다. 동성애자는 법률, 사회적 측면에서는 혐오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문학 텍스트 상에서는 조롱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었으며, 문학텍스트들이 사용한 조롱과 멸시의 언어들은 대중에게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주입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영국은 제국주의국가를 기획하면서 전쟁에 필요한 군인을 국민을 동원해 충당해야 했고, 그러한 남성성이 요구되는 체제에서 동성애자의 여성성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남을 수 없는 국가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한편 근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악습처럼 여겨졌다. 문인들은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남성의 여성화 풍습’으로 인해 영국의 고유한 남성상이 훼손당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모습에서 동성애는 민족 담론의 측면을 나타낸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프랑스에서 동성애를 범죄에서 제외하자 영국인들은 이를 프랑스식 부도덕으로 여기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탄압에 열을 올리는 등 민족주의를 고양시키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의 동성애 붐, 단순한 미화를 경계해야 할 터

  한국에서 동성애 문화는 마이너 문화에서 주로 생산되어왔다. 네티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캐릭터를 서로 엮은 야오이, BL매체를 창작하며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켜왔고 최근 개봉한 동성애 영화들도 기실 주인공들의 출중한 미모(?)에 관심이 집중된 면이 없지 않다. 예쁜 하리수는 인정받을 수 있지만 매처럼 생긴 홍석천은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 성적 소수자가 단지 미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 성적 소수자들 자체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강연은 동성애가 함유한 깊은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살펴볼 만한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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