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새’를 생각한다.
  가을이 온 지도 모르게 가버렸다. ‘어느새’.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노을이 지고, 그 사이로 ‘새’가 날고, 하늘하늘 ‘억새’는 찬 바람에 눕는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새’는 어느‘새’. 어느새 대학생이 되고, 어느새 취업할 나이가 되고, 또 어느새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수많은 ‘어느새’들은 때로 반갑지만 때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새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기 위해 ‘높이 날아야 멀리 볼 수 있다’고 했던 갈매기 조나단을 그리며 우리는 오늘도 날개에 시동을 걸어본다. 날지 못하는 새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퍼덕퍼덕 한다. 그러나 ‘어느새’ 차가워진 바람에 드러눕는 ‘억새’처럼 스러지고 만다. 차가운 현실에 더욱 더 ‘취업, 취업’ 해보지만 ‘취하는’ 게 시대의 ‘업’이 되고 마는 차가운 현실. 다시 다가올 등록금의 공포, 기나긴 백수와 백조의 계절, 집안 가득한 차가운 입김…….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꿈을 향한 날개를 접어야 한다는 사실.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낙엽이 하나 둘 지고 찬 바람이 불어오니 많은 이들이 걱정된다. 이기적인 나는 가장 먼저 내 자신과 내 가족이 걱정이다. 아버지 이마에 또 한 줄 늘어갈 주름살이 걱정이고, 어머니의 차갑고 튼 손이 걱정이고, 학벌사회의 희생자인 내 동지이자 동생들이 걱정이다. 또한 겨울을 ‘겨울답게’ 추위 속에 보내야 하는 그들이 걱정이다. ‘올 겨울엔 안 잘려야 할 텐데’ 마음 졸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풍년 들어서 올해는 먹고 살 만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힘든 농민들, 정규직이지만 닥쳐온 경제 위기에 언제 해고될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회사원들, 1년 내내 마음의 ‘겨울’을 나고 있는 그들 모두가 걱정이다.
  겨울은 새하얀 눈이 내려서 밝을 것만 같지만 너무나 어둡다. 우리의 겨울은 너무나 길고 어둡기만 하다. 이 겨울, ‘어느새’ 날지 못하는 새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연습도 해보고, 겨울을 나기 위해 모이도 비축해두지만 찬 공기에 날개가 얼어붙고 마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아야 하고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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