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어느 경제연구소의 신입연구원 선발시험에서 도둑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내용은 “도둑질이란 특정 재화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경제 전체의 차원에서는 부(富)의 손실을 발생시키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출제자는 아마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소유권이나 생산양식에 관한 답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도둑질에 의해 부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은 경제 전체의 측면에서는 손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소유권이 박탈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개인의 의욕이 크게 저하된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력 저하를 가져오고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부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PC와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정보의 공유권과 정보의 소유권이 활발한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해커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 공유 지상주의자들은 정보의 공유권이야말로 극단적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양식이라고 주장한다. 해커는 1950년대~1960년대 미국 MIT대학의 TMRC라는 컴퓨터 동아리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미국 대학에 소위 “히피(hippie)”들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해커들은 부분적으로 이들의 사상을 컴퓨터와 네트워크에서 구현하려 하였다. 따라서 해커의 문화에는 공동체적이며 아나키(무정부)적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 이들은 1970년대에 미국 정부가 전화세 인상으로 월남전의 군비를 확보하려 할 때 폰프래킹(Phone Phracking)이라는 공짜전화 사용법을 유통시켜 전화 사용료 거부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기본 정신은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 의해서든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모든 정보는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 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과 이의 대안으로 분권화가 촉진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이들은 사이버 공간 상에서 ‘정보해방의 첨병’ 노릇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들에게 정보란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정보를 이용한 상품화 반대, 정보에 대한 평등권 부여 등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나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같이 정보자원을 독점하는 기득권 세력을 주요 공격목표로 삼고 있다.
  해커에 대한 위의 정의에 따를 때, 최근 리눅스를 중심으로 하는 무상 운영체제의 공유, P2P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의 분권화와 MP3 및 DivX 파일의 공유, 전 세계 주요 정보 독점 서버에 대한 서비스거부 공격(DoD) 등은 어쩌면 정보해방을 주장하는 해커로써는 당연한 임무인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주요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세계 각국 정부나 MS 등 독점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기존 질서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해커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면서 이들을 크래커(악의적인 해커)로 몰아붙이고 있다. MS의 빌게이츠도 몇 년 전 윈도 운영체제에 대한 반독점 소송의 법정 증언대에서 “일부 오픈 소스(리눅스) 운영체제에서 볼 수 있듯이 소스 코드의 수정은 자유정신을 구현하는 데에는 이상적일지 모르나 산업발전이나 소비자의 편의성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에서 보면 해커는 분명 산업의 생산력을 저하시키는 범죄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정보해방, 사이버 아나키즘”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대변되는 기존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양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필자 역시 요즘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좌파”에 해당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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