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못 믿을 말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오빠 못 믿니?’ 따위의 거짓말은 거짓말 축에도 못 낀다. ‘서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도, ‘나는 그런 돈 받은 적 없다’는 말도 이제는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의 차원을 넘어선 관용어가 되어버렸다. (이 때 ‘관용’의 뜻은 ‘습관적으로 늘 씀’이라는 뜻인 ‘관용(慣用)’이라 이해해도 맞고 ‘정부 기관이나 국립 공공 기관에서 사용함’이라는 뜻인 ‘관용(官用)’이라고 이해해도 맞을 듯싶다)
  이제는, 그 거짓말이 ‘거짓말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하는 누리꾼들의 댓글 조차 막겠다고 한다. 물론 얼토당토 않는 댓글, 근거 없는 댓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댓글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에서 무언가를 밝혀내거나 비판 하려는 댓글에 대해서도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어서 문제다.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수사가 가능하게 한다고 하니, 권력에 참 친절한 법이다.
  그런데 나는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 논란에 앞서 우리들의 믿음과, 표현의 자유를 논할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 번 쯤 당신의 믿음을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믿음이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의 신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대개 우리의 잘못된 근거에 의한 잘못된 믿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한다. 또한 근거 없는 믿음을 상대방에게도 어느 순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한 근거 없는 믿음이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박힌다. 아프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과연 표현의 자유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근거도 없는 믿음을 전달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우리들이 사이버 모욕죄 논란에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내 이름이 올라가든 안 올라가든 근거 있는 믿음, 그 믿음에 의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표현의 자유를 논해야 한다. ‘너’와 ‘나’의 믿음이 바탕에 깔려 ‘네 이름이 무엇이든’ ‘너’를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 후에 표현의 자유를 논해야 한다. ‘네 이름’이 결코 중요하지 않은 신비한 온라인 커뮤니티, “오빠 못 믿니?”라고 물었을 때 “아니, 믿어!”하는 대답이 바로 나올 수 있는 즐거운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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