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 한국 유학생활 1년을 맞으며


  한국에 온 지도 벌써 거의 1년, 오늘도 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학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10년 교원 생활에 신물이 난 걸까, 아니면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라는 비장한 마음에서일까, 헤아려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스승의 날이 9월 10일로 되어 있다. 9월 역시 신입생들이 등록하는 시기라 매양 그맘때면 학교는 명절 기분에 넘쳐 난다. 가르쳤던 학생한테서 축하의 카드와 메일, 문자를 받을 때마다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저 웃어만 준다. 그게 그렇게 좋으냐고……. 물론 당연한 거지. 이 재미에 내가 교편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교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것이 바로 나의 미래의 생활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고 그 궤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가족을 떠나서 이 머나먼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온한 생활을 누리고 있던 나한테 뜻하지 않던 변화가 생겼다. 내가 있던 대학교가 다른 대학교와 통합하면서 학과를 다시 설치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소속되어 있던 정치교육학과가 다른 학과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교수, 강사들도 많이 줄이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원래 전공이 정치학이고 이미 석사학위까지 받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근심 걱정에 한숨만 내쉬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일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무사히 넘겼지만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교육개혁, 누가 다음에도 무사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으랴.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살기보다는 아예 내가 운명의 주인이 되어 보자. 이렇게 내린 비장한 결단이 바로 이제라도 새로운 학과를 선택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것이었다. 서른도 훌쩍 넘은 나이에, 그것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는 것,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나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결심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린다. “너무나 큰 모험을 하는 게 아니냐. 그 좋은 대학교에서 계속 학생들 가르치면 되지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고 부모님께서도 말리셨다. 정말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까? 여자나이 서른다섯이면 많은 나이인데 이 나이에 새로운 공부라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리질이다. 그것도 한국어를 배운답시고 유학을 간다니 다들 그만두란다.
  하지만 한국어를 선택하게 된 것도 나로서는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민족학교(한국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다닌 나는 한국어에 남다른 흥취가 있었고 한국어로 된 책 읽기를 즐겼다.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어만 잘하면 되지 그럴 필요가 있냐고 잔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사용하시는 한국어에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한국어를 모국어로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내가 한국어를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민족 말과 글, 더욱이 한국어가 요즘은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서 가족들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했다. 그저 남편과 어린 아들이 걱정되어 결심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남편이 등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다시 오지 않는 기회라며, 아직도 젊은 나이에 더 배우라면서 가족들 걱정은 하지 말란다. 그런 남편이 얼마나 고맙던지…….
  공항에서 눈물 흘리며 떠나던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1년이 거의 돼 가고 있다. 다시 학생이 되어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노라니 나의 대학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다시 하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을 몰랐으니 아마도 내가 너무 배우고 싶었던 것이라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이 배움의 기회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꼭 잘 배우고 싶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찌나 힘들었던지 “내가 왜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라고 후회도 했었다. 집 생각, 아들 생각에 밤마다 울었고 늦게 하는 공부가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다. 울적한 마음에 주위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으니 그 힘든 첫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오솔길을 걷고 있는데 머리위에서 난데없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름도 모를 새들이 가을이 왔노라 지저귀고 있었고, 푸른 나뭇잎사이로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지?’하고 한참 올려다보다가 그만 혼자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 나무와 새들이 그날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난 학기에도 있었으련만 왜 오늘에서야 보이게 되었는지……. 그래서 마음에 안 보이면 눈에도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커피 한잔 타 놓고 책상에 마주 앉아서 이 글을 쓴다. 나한테 이런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울 뿐이다. 처음에는 학위를 꼭 따야 한다는 강박감에 숨쉬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공부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제야 새삼스레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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