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학 다닐 때나 지금이나 축제를 ‘대동제’라 부르지만, ‘대동’‘축제’의 유래와 참뜻은 아는 이 드물다. 예전엔 고을마다 ‘대동계’가 있었다. 누구나 자격제한 없이 낄 수 있는 ‘크게 하나 되는 계’다. 이 ‘대동’은 서경 홍범편에 나온다. 은을 친 주무왕이 기자를 예방해 천하통치의 큰 법도를 여쭙자, 아홉 가지 하늘의 도를 전하는데, 그중 의심스러운 일을 결단할 때 거북점·시초점의 하늘 뜻과 임금·신하·백성의 사람 뜻이 모두 일치하면, 가장 길한 ‘대동’이었다. 예기 예운(禮運)편에도 보인다. 공자가 천하 다스림을 대동·소강·혼란으로 나누어 포부를 밝힌 대목이다. 기린·봉황·거북·용의 네 영물도 여기 나오는데, 전남대는 그 둘을 지녔다.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정하여, 현인과 유능한 이를 쓰고 신의와 화목을 닦기에, 자기 부모나 자식만 챙기지 않고, 늙고 어리고 병들고 외로운 이들을 잘 보살피며, 청장년은 일거리가 주어지고 남녀 모두 제때 제짝을 짓는다. 재화는 땅에 버려지지 않되 사유로 독점하지 않고, 능력은 사장시키지 않되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모술수와 도적혼란이 일지 않기에,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이를 대동이라 부른다.”
  축제는 서양처럼 추수감사의 뜻에서 백일 농사를 위로하기 위해, 하루동안 온통 술에 취해 노래와 춤으로 피로를 푸는 예다. 공자가 축제를 보고 자공한테 즐겁냐고 묻자, 온 나라가 다 미쳐 날뛰는데 뭐가 즐겁냐고 반문한다. 이에 공자는 광란의 축제의미를 일러준다. “긴장만 하고 이완하지 않음은 문무성왕도 불가능하고, 이완만 하고 긴장하지 않음은 문무성왕이 하지 않는다. 한번 죄었다 한번 푸는 게 문무의 도다.”
  과연 우리 대학축제는 어떤가? 시대가 바뀌었지만, 기본정신과 목적은 고금이 통한다. 근데 이름만 대동이지 반쪽같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눠지듯, 놀자파와 학구파로 갈리는 감도 없지 않다. 나는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화끈하게 놀지도 못했는데, 서양처럼 ‘공부할 땐 무섭게, 놀 땐 화끈하게’ 방식이 전통 축제정신에 딱 맞는다. 유학대동(遊學大同)이다.
  예전엔 선비들도 거문고 음악으로 심성을 수양하고 학춤으로 몸과 기를 단련했다. 지금 서양학자들이 악기와 운동 한가지씩 수준급으로 즐기듯!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심신대동(心身大同)이다. 궁극에는 천도를 궁구하고 자신을 닦아 덕을 천하인민과 함께 나누는 지행합일·도덕합일을 향했다. 천인대동(天人大同)이다. 이걸 도학(道學)이라 불렀다.
  나는 어리석고 안타깝게도 청춘 학창기를 허송하고, 심신이 극도로 망가져 기사회생한 다음, 교수가 되어서야 참 배움에 조금 눈뜨고 있다. 젊음도 체력도 다 시든 뒤, 이제야 등산과 고루한 취미로 학문의 긴장과 피로를 풀어가며, 그냥 헛되이 죽을 수는 없어 외롭고 괴로운 분투를 계속한다. 2~3일에 한번씩 오르는 무등산은 나의 심신을 위로해 주는 축제의 장이고, 학문의 영감을 내려주는 천연 연구실이다.
  젊은 학생들이여! 시대와 환경이 몹시 어렵다고, 너무 주눅들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또 “진짜 금은 용광로 불길이 두렵지 않다.” 꼭 학교 단체축제가 아니라도, 각자 자신만의 ‘대동축제’를 설계해, 건전한 긴장과 이완의 방법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하늘과 인간의 도덕을 닦아 삶의 꿈과 운명을 스스로 가꿈 직하지 않은가? 학교의 ‘대동제’도 명실상부한 실속으로 더욱 알차고 의미 있게 성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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