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다 섬뜩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글을 신나게 읽어내려 가는데, 주인공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비대한 몸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다 서른 즈음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를 ‘그녀’라고 규정해버렸다.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그녀’가 아니라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근데 왜 갑자기 살 뺄 생각 같은 걸 한 거야? 여자랑 자려고?”라고 한 부분에서였다. 은희경은 그 전까지 내게 몇 번이고 ‘그녀’가 아니라 ‘그’임을 암시해주었는데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내 속에 갇힌 나의 성(性)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또한 탓했다. 그 동안 ‘여성과 법률’, ‘여성과 문학’을 수강하고, 이번 학기에는 ‘법여성학’ 까지 수강하면서 ‘여성’에 관한 수업은 모조리 들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여성’과 관련된 과목들을 세 개째 듣고 있는 나이다. 영화 ‘칼라퍼플’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감동하던 나였다.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고 자부해왔던 내 자존심을 내 스스로가 뭉개고 말았다. 나는 내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내 안에 여성들을 가둬두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성을 가두고 있는 그들이 여성들을 꺼내주기를 바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여성’을 이야기할 자격이,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면 요즘 벌어지고 있는 성매매 업소 단속 강화 조치에 대해 몇 마디만 하고 싶다. 단속 범주를 ‘나라의 어두운 곳’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진짜 밝은 곳’까지 넓혀야 하지 않을까. 나처럼 ‘여성’을 이야기 한다면서 자기 안에 여성을 가둬놓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자연스럽게 3차를 ‘그곳’으로 가는, 머리에 기름칠 꽤나 하고 지갑이 두둑한 사람들과 학술대회에서 여태껏 ‘자유와 평등’을 논해놓고 ‘뒷풀이’를 ‘그곳’으로 가는 몇몇 ‘헛똑똑’한 사람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단속의 대상이 돼야 한다. 지금도 어두운 곳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갇힌 여성들을 꺼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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