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고창읍성의 넓은 뜰엔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들이 회색빛 모자를 눌러쓰고 줄지어 서있었다. 아침 7시, 8월의 태양은 내리 꽂고 있었고 그 광선을 등지고 방송국 카메라들이 취재로 분주했다.
인솔자는 여학생들 앞에 서서 각자의 손에 배급된 알소금 한 웅큼을 입에 털어 넣고 목구멍으로 넘길 때가지 지켜보고 나서야 다음 줄 순번으로 넘어가며 한 사람씩 태양에 그을리기 전의 간맞추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여름 보름간의 ‘조국순례대행진’에 참여한 전국 600여명의 대학생들이 여러 경로에서 동시에 출발하여 경기도 이천에 모일 첫 날 모습이다.
  개회식이 진행되는 도중 단상을 향해 줄서있는데 점차 태양빛이 흐릿해 보이면서 울려 퍼지던 마이크 음성이 희미해졌다. 눈을 떠보니 병원 구급차가 보였고, 난 그 옆 큰 고목나무 그늘 아래에서 들것에 누운 채 출발도 하기 전에 저 세상을 잠깐 다녀왔던 것이다.


  올 여름에는 40도가 넘는 이집트를 향하면서 25년 전 내가 내딛었던 걸음을 이어서 밟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의 국토대장정 행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쓰러지는 학생들로 인해 방송에서는 객기부리는 젊음의 무모함도 지적하지만 건강이 받쳐준다면 한 번쯤 해볼만한 대학시절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눈으로는 세계를, 가슴으로 조국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출발한 280여 킬로미터의 긴 장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갔고, 한낮에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를 느끼며 횃불을 들고 걷던 끝없는 김해평야의 야간행진이면 조국이니 젊음이니 하는 화두는 사치스런 만용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낮잠 잘 시간을 벌려고 밥을 짓는 대신 라면을 끓여먹다가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고, 부르튼 발의 물집 안에 물집이 또 생겨 절룩거리면서도 밤이면 텐트마다 돌면서 소독된 바늘로 물집을 터주기도 하였다. 양동시장에서 샀던 3천원 짜리 운동화 바닥창이 떨어져나가 ‘엄마! 보고싶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강물에 띄우기도 하고, 고개 쳐들 힘도 없어서 이것은 X이키, 저것은 X로스펙스 발자국이라 헤아리는 정도가 정신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렸으니 어찌 조국을 논하고 젊음을 이야기 했을까.


  일주일 넘게 샤워 한 번 못한 날에 갑작스레 내려준 소나기에 샴푸를 꺼내어 머리에 바르는 호사를 누리는데 미처 헹구기도 전에 그쳐버린 소나기로 거품난 머리를 그대로 말리며 걸었던 일이며, 학교 담벼락에 줄세운 남학생들이 빨간 119 불자동차 호스가 내뿜는 물폭탄에 샤워를 하고, 그 담벼락에 올라 앉아 발가벗은 형들의 잽싼 비누칠을 구경하던 동네 개구쟁이들의 표정까지, 그 시절의 부족함과 힘겨움속에서 내 젊음은 황금들판의 곡식이 익어가듯 차곡차곡 영글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확을 꿈꾸는 자는 씨를 뿌려야하듯 어떤 형태든 도전정신으로 준비해가는 학생들이 내 연구실을 노크할 때 예전의 나를 돌아보는 듯 흐뭇해진다. ‘내가 그냥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글귀를 들려주고 싶은, 내 젊은 날의 여름은 지금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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