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영웅 방영웅의 장편소설『분례기』의 여주인공 석분례는 소설 내내 순우리말 별칭인 '똥예'로 불리운다. 변소간에서 태어낳기에 붙여진 이름 '똥예'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하잘 것 없이 취급되던 촌부들의 전형이다.

온갖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건강하게 웃음짓던 여인 '똥예'의 모습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소설 속 호롱골은 현재 충남 예산군 예산읍 대회리에 위치하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렸음에도 '똥예'의 고향 예산을 찾아가는 길은 그녀의 힘겨웠던 삶의 여정만큼이나 더디고 막막하다.



니들 그렇기 누워 있는거여. 굶어 죽을 때까지... 그럼 니 애비가 와서 송장은 쳐줄라.」
석서방댁의 무서운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더 눈을 껌벅거린다. 어머니의 공연한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무서워지는 모양이다. 아니면 점점 고파지는 배가 두려운 것인가.(중략)
똥예는 방안의 동정을 살피며 밀기울을 손가락으로 쑤시어본다.
「이 육시랄 년아...」
이번에는 질그릇 깨지는 소리다. 똥예는 바가지를 절구통속에 다시 넣으며 절구찧는 소리로 대답한다.
「왜 그래유.」
「똥뒷간에 간 년이 똥독에 빠져 뒈졌니, 거기서 뭘 허는 거여. 빨랑 못들와.」
똥예는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아이들은 서운해하는 눈치고 석서방댁은 입에 거품을 내며 야단이다.
「이 년아, 고거 한숟갈 해 처먹어서 뭐가 낫니 뭐가 나...」
똥예는 제자리에 앉아서 주둥일 내민다.

방영웅의 『분례기』중에서



절대 가난이 천형처럼 지배하던 공간 호롱골. 소설 속에서는 마을 전체가 호롱골로 불리우지만, 실제로는 커다랗게 자리한 느티나무를 경계로 호롱골과 닷박골로 나뉘어진다. 이 마을에서 '똥예'는 품행이 방정치 못한 과부들을 따라 다니는 것을 염려한 어머니의 명령에 의해, 고자로 알려져 있던 '용팔'을 따라 나무를 하러 다닌다. 봄처럼 따뜻한 어느 동지날 '똥예'가 용팔에게 겁탈당하던 가새바위와 시름이 고개 근처는 울창하게 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용팔과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똥예'는 같은 마을 친구인 '봉순'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봉변당한후 목매달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순결을 잃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봉순처럼 죽으려고 결심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 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악착같은 생존의욕을 가다듬는다.





― 봉순이 죽었다구 내가 왜 죽는디야, 남이 장에 간다니까 무릎에 망건 쓰는 꼴이지.
똥예는 작대기를 들고 숲속에서 어정어정 걸어나온다. 쓰러져 있는 지게에 작대기를 받쳐주고 따가운 봄볕이 내려 쏟고 있는 사방을 둘러본다. 똥예의 눈에 들어오는 나무며 풀들은 지난 겨울에도 살아 있었다. 그러나 모진 추위에 죽었다 새봄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왜 나만 죽을까.
― 왜 나만 죽는디야. 나두 악착같이 살아볼 것이여.


방영웅의 『분례기』중에서


호롱골에서 형제고개를 따라 오백 미터쯤 가니까 오른쪽으로 장터가 나온다.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기와 쌀밥 타령을 외쳐대던 똥예의 어린 동생들이 장날이면 멸치며 호떡을 훔쳐대던 그 곳 장터. 당시 주요한 연료였던 장작을 파는 남정네들 사이로 '똥예'같은 여자들이 솔가리 더미를 쟁여와 팔던 개천 옆의 장터 거리엔 여전히 5일장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대형할인매장들과 현대식 상가들에 밀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예전의 위세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장터 바로 옆은 '똥예'가 무능력하기 그지없는 부모에 의해 재취자리로 팔려가다시피 시집 간 동네 새말. 꽃가마는커녕, 이웃들의 눈을 피해 쥐도 새도 모르게 마을을 빠져 나와 상여집에 숨어 옷갈아 입고 얼음 눈으로 세수하며 크림과 분을 바르던 '똥예'가 시집갔던 그 새말이 바로 지금의 예산리이다. 공주대 산업과학대학에서 예산농협쪽으로 꺽어드니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장터거리, 즉 똥예가 애꾸 노름꾼 남편에게 두들겨 맞으며 용팔을 그리워하던 자리에 해당하는 예산 읍사무소가 보인다. 기생집으로 유명했던 조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한옥들을 대신하여 이젠 고만고만한 상가들이 자리하고 있고, 멀찍이 높다란 아파트들이 보여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행복이란 결코 낮고 천한 이의 몫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오줌 구멍난 남자 작업복만 입고 지내던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입어봤던 노랑저고리와 분홍치마는 결코 행복의 상징이 되어주지 못했다. '똥예'는 자신이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이 노랑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아비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마저 '콩조지'에게 도둑맞아 버린 미친 여자 '옥화'에게 입혀준다. 옥화는 '똥예'의 치장을 받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해뜨는 나라'를 찾아 떠나고….
늘상 매질을 일삼던 남편은 노름판에서 큰돈을 털리던 날, 마침내 '똥예'를 흠씬 두들겨 실신시킨 후 화냥질했다는 누명을 씌워 쫒아 낸다. 들풀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닌 그녀였지만 끝내 가혹한 세상의 시련 앞에서 자신을 지탱하던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소설 『분례기』는 운명처럼 짓누르는 가난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가난의 어둠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애쓰던 여인 '똥예'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추락해가는 모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주인공 '똥예'의 인생은 가난으로 덕지덕지 누벼져 있지만, 정작 『분례기』는 근대문학에서 우리 농촌의 빈궁상을 가장 잘 드러낸 보석같은 작품으로 화한다.
또한 이 소설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작품이 우리들 모두의 근본적인 고향인 농촌의 정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분례기』에는 용팔과 병춘 부부들이 불러제끼는 사랑타령, 음담패설에 가까운 과부들의 질펀한 민요 가락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맺히고 풀리며 이어진다. 어디 민요 가락 뿐이랴. 속담과 격언들이 시골 냄새 물씬 나는 사투리 옷을 차려 입고 소설 곳곳을 누빈다.
수철리로 꺾어드는 갈림길, 이 길에서 마치 예전의 옥화가 그랬던 것처럼 미친 여자가 된 '똥예'는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친 후 봉순의 무덤가를 지나 '해뜨는 나라'를 향해 떠났다. 까마득하게 사라져가는 똥예를 향해 용팔은 흥얼거린다.

「똥예야 잘 가라.」
용팔의 음성은 넓은 벌판에 울린다. 그러나 똥예는 벌써 보이지 않고 있다. 용팔은 수철리를 향하여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달래야 달래야 진달래야
바위야 바위야 가새바위
구름같은 말을 타고
수철리 고개를 넘어가서
곱사대야 문 열어라
춘향이 얼굴 다시 보자
너 죽어서 꽃이 되고
나 죽어서 나비 된다
나비 됐다 서러 마라
꽃밭으로 날아든다.

방영웅의 『분례기』중에서


가부장제와 가난이 만들어놓은 얼룩으로 뒤덮인 인생을 살다간 여인 '똥예'가 찾아 떠난 해뜨는 부상(扶桑)은 어디였을까. 과연 그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또 다른 '똥예'들이 '해뜨는 나라'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똥예'는 떠나갔지만 많은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상업화의 조류에서 소외되고 뒤쳐져 있다. 호롱골 맞은편 삼박골에 설치된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주민의 분노로 발버둥치는 예산 읍내. '똥예'와 주민들의 무너진 꿈을 알고 있는지 저녁해도 어느덧 아픈 발걸음을 떼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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