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주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작년 7월 어떤 결혼식에서 둘이서 같이 사회를 본 친구들이 서로 인연이 되어 정확히 1년 후인 다음 달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남녀가 커플로 결혼식 사회를 보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것으로 안다. 직장 동료 사이였던 두 남녀가 흔치않은 일을 함께했기에 특별해진 것이 아닐까?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오묘하기 그지없어 예측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인연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다. 그리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희한하고 유별난 인연들이 많았던 것 같다.
  전남대 유학시절 한국에 온지 딱 1주일 만에 처음으로 모 학과 학생회실에 들르게 되었다.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던 터라 한자를 써가며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겨우 겨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친구와 2년 후엔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었다. 또 한국생활 10일쯤 되었을 때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야 되겠다고 밤새 공부를 하기 위해 기숙사 정독실에 갔다가 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혼자 열심히 책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친구를 보았다. 눈에 송곳이 달렸다면 아마 그 책은 진작 구멍투성이의 누더기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모습에 많은 힘을 얻었던 이름조차 모르던 친구와 3년 후에 역시 우연히도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3년 전남대를 잠시 떠나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이틀째 되던 날 바로 옆 자리에 느닷없이 교과서를 좀 보여 달라고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남대에서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던 친구였다. 조그마한 캠퍼스에서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중국 장춘에서 보다니…. 또 예전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영어연수를 하면서 나란히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친구와 5년 후 광주 시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런 우연은 비단 한국 사람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여행시 10일 동안 같은 호텔 방을 쓰던 친구를 영국 런던에서 만난 일도 있고, 또 스페인 구석구석을 같이 돌아다니던 친구를 한국 서울에서 만나고, 유럽의 모 유스호스텔 방을 쓰게 된 친구를 뉴질랜드의 거리에서 우연히 본 신문 속에서, 중국 장춘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친구를 일본 후쿠오카 지하철역에서…. 이러한 우연을 예정된 인연 또는 필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여러 형태의 인연을 맺는다. 그 인연을 잠시 스쳐가는 일회성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고귀하고 향기로운 것으로 발전시켜 나갈지는 마음의 문제이며, 의지의 문제이다. 다만, 스스로 움직이지 않은 한 그 인연은 붙잡을 수가 없어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나는 많은 인연들로 떠받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연 중에는 앞서 말한 우연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있다. 실제로 내가 이곳 전남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연이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말 중에 ‘絆(Kizuna)’과 ‘緣(En)’이란 단어가 있다. ‘絆’은 “사람과 사람의 끊기 어려운 유대”를 말하는 것이고, ‘緣(En)’은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인연”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緣’, 그러나 그것이 ‘絆’으로 이어질 지는 본인의 행동여하에 따라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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