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천나게 잠이 많은 젊은 날에 실컷 자두게나. 나이가 들면 쉬고 싶어도 잠이 없어 힘드네.” 잠이 오지 않던 그날 밤에 은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문득 생각나기에 웃음을 흘리며 무심코 TV를 켰다. 화면 속에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활활 불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예전의 범죄가 단순히 돈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세계를 주목하게 하는 극장형 신종범죄가 생기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11월 9일에 무너졌고, 미국 911 테러는 뒤집힌 숫자에 시차공격을 하여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여든 넘은 노인이 국가의 원수도 전쟁영웅도 되지못한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당시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지르면서, “이것은 아무개가 불 질렀소!”라고 소리쳐 결국 오늘날 유명 백과사전에 악명이 수록되었다는 이야기도 ‘나도 유명해지자는 유형’이다. 이제는 역사 속만이 아닌 우리들 주변에서도 불만을 폭력으로 분출하는 일은 빈번히 발생하는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TV를 보는데 이어지는 또 다른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와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시기에 생기기 쉬운 극장형 폭력은 모방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며칠 뒤우리 대학 여러 곳에서도 심야 방화사건이 있었으며 목격자를 찾는다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경찰 순찰차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교내 여러 곳의 잘 보이는 위치에는 이상 거동자를 보거나 사건발생 시에 신고하라는 현수막이 한 달 넘게 내내 걸려있었다. 현수막이 철거되던 날, 여러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안전홍보 현수막을 보았느냐?” 단 한명도 없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어떤 사고가 생기면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 “119요~!”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동시에 소리친다. “그럼 외부에 신고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상황에는?” “...” 역시 단 한명도 모른다. 114에 전화번호를 문의해 보려면 부서명이라도 알아야하지만, 총무과이니 상황실이니 하는 부서명 자체도 학생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며, 현수막에 주간, 야간 나누어서 적어둔 의미 없는 숫자조합을 그 누가 기억해두고 긴급 상황에 신고를 할 수 있겠는가?
  생활에 있어서 방어운전이 필요하나 내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될 사회의 위험 속에서 최대한 나를 보호하는 요건을 갖추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실천의 중요한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이 함께 변해가야 한다. 서로의 반대 입장에 서서 살펴볼 줄도 알아야하며 불합리한 것은 제안하고 요구할 줄도 알아야한다.
  제과점에서 할인카드를 내밀자 생일 네 자리 숫자가 비밀번호라며 불러달라고 한다. “0119...” 호적에 잘못 올라간 나의 가짜생일이 모든 사람들의 해결사가 되어있는 119였음에 새삼 놀랐다.
  제비는 사람의 손만 뻗으면 잡아먹히는 처마 끝에 제비집을 짓는다. 모든 짐승이 인간을 적대시 하는데 뭘 믿고 사람 곁에 집을 짓겠는가. 어떤 병에 효험이 있다며 제비집을 먹는다는 속신은 들어봤어도 제비를 먹었다는 얘기는 없다. 믿음인 것이다. 캠퍼스가 공간적으로 개방되면서 막연한 믿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 대학 구성원들에게 119와 같은 시스템이 어떤 것일지 다시금 점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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