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만들기’와 ‘신문’ 만들기 사이

  가끔 나는 내가 ‘학생 편집장’인지, ‘편집장 학생’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둘은 단어의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보통은 ‘편집장 학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더 많다. 내게는 항상 <전대신문>이 1순위다. 신문 만든답시고 수업도 빼먹기 일쑤, 과제도 제 때 내 본 적이 없다. ‘내가 수업을 뺀 1시간이 누군가의 10시간이 될 수 있다면’하는 핑계로다가……. 그런데 사실 핑계가 아니라 정말이다. 내가 신문을 10시간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내가 쓴 기사 혹은 <전대신문> 기자들이 쓴 기사를 읽고 독자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독자의 1시간이 조금이라도 깊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전대신문>을 ‘이용하는 이들’ 말고, <전대신문>을 펼쳐놓고, 10분 이상 읽어보는 이들을 보면 가끔씩 ‘섬뜩’하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전대신문>을 보고 가끔 <전대신문>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제시해 주시는 교수님들,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뜩 든다. ‘아, 우리 신문을 저렇게 유심히 보는 독자가 있고, 나름대로 신문을 평가하고 있는데 나는 얼마나 깊이 있는 기사,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기사를 쓰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혹여 <전대신문> 기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신문’ 만들기보다 신문 ‘만들기’에 급급하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신문’과 ‘만들기’ 둘 다 중요하겠지만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저 ‘만들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
  대학 신문이 위기라고들 한다. 아니, 종이 신문이 모두 위기라고들 한다. 여러 가지 대안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소통하고 관찰하는 데 주력하련다. 그것이 신문의 본분일 테고, 본분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신문의 시대’가 오겠지. 사람도 54살이면 어엿한 중년, 사회에서 큰 소리 칠 수 있는 나이인데 <전대신문>의 54살 생일은 초라하기만 한 것 같아 <전대신문>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내년 55살 생일, 아니 ‘생신’ 때는 조금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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