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에서는 프리아모스 왕이 아킬레스에게 죽은 아들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면서 자식의 눈 위에 동전을 얹는 장면이 나온다. 원시시대의 화폐는 생전에 지은 죄를 씻고 신에 대한 채무를 갚는 지불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한서지리지>에서 전하는 고조선의 <8조 금법>에서도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한다”고 규정하여 물품 화폐로서의 곡물이 손실을 보전하는 지불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화폐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산업사회를 대변하는 초기 자본주의의 산업자본가들은 돈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보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기업의 최대 목적으로 삼았다. 13세의 소년에게 불과 돈 몇 푼을 쥐어주며 골방에서 하루 20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초기 산업자본가의 모습이 청년 마르크스에게는 이른바 “저주받으리만큼 가증스러운 돈에 대한 탐욕”으로 비추어졌으며, 궁극적으로 <자본론>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산업화가 훨씬 진행된 현대사회에 있어서 화폐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의 노란 월급봉투가 은행의 통장으로 대체된 지는 20년이 훨씬 넘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신용카드와 전자화폐의 등장,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발달 등으로 화폐는 점차 하나의 숫자로만 인식되어가고 있다.
  월급이나 외부 강연비, 용역 인건비 등이 통장에 들어오면 휴대폰을 통해 은행에 얼마의 숫자가 새로이 들어와 새로운 총액이 얼마인지를 알려주며, 이 가운데 일정 숫자는 지난달 각종 카드사용 결제를 위해 지출되고 일부는 지로 등을 통해 은행 계좌를 통해 빠져나간다. 일정 금액을 예약하면 매달 고아원이나 종교시설 등에 일정 숫자가 기부되고, 심지어 과속이나 신호위반 등의 교통범칙금도 거래은행에 자동 연결되어 알아서 숫자를 감소시킨다.
  사람들은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자신의 계좌에 얼마의 숫자가 있는 지를 확인할 뿐, 점차 화폐라는 물질적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경제적 행위는 이 숫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며, 다양한 소비행위는 이 숫자의 크기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이다. 부자란 자기에게 주어진 숫자가 큰 사람을 의미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숫자를 충전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고 있다.
  불경의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란 글귀가 있다. 무릇 상(모습)이라 하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 허망한 것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불가에서는 이 구절만 잘 지켜도 굳이 여러 경전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얘기한다. 화폐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물질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으로 그 모습은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또한 가치 자체도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화폐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란 금강경의 말처럼 허망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있고 교환이 있는 한 화폐라는 속성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할 것 같다. 그리고 고위층에 주는 뇌물도 사과상자가 들어있는 차떼기식이 아니라 잘 세탁된 자동인식 메모리카드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화폐만큼이나 뇌물도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하면서 인간과 역사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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