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다녀왔다. 내가 본 서울의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 청계천 주변을 몇 바퀴나 돌며 본 풍경은 ‘소통의 풍경’이었다.
  나는 서울을 자주 가는 편이다. 올해만도 벌써 여섯 번째 정도는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서울 사람들은 너무 여유가 없어’, ‘빡빡해’, ‘숨 막혀’ 등의 생각만 하고 돌아왔다. 그 때마다 나의 ‘서울 나들이’는 어쩌면 실패한 나들이였던 것이다. 서울 나들이를 갈 때마다 서울의 찡그린 표정, 힘겨운 표정들만 보고 왔으니 서울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이번 ‘서울 나들이’는 달랐다. 광화문 근처에 몇몇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하고 있었다. 정해지지 않은, 말 그대로 ‘자유 발언’ 시간에는 ‘지나가는 행인’이라는 사람부터 ‘참다못해 이 자리까지 나왔다는 평범한 시민’ 등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했다. 청계천 주변을 돌고 나서 다시 찾은 촛불 집회 현장에는 사람들이 두 배로 불어나 있었다. 촛불들이 총총히 빛나는 서울의 달밤. 시청 광장에서는 공공 노조의 시위가 있었고, 청계천을 둘러싸고 건설 노동자 노조 등 곳곳에서 테마를 달리 한 집회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지만 그들의 목소리 가운데서 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도무지 들어주지 않으니, 그들이 한 데 모여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빡빡하고 지친 삶 가운데서도 ‘서울인’들은 그들의 삶을 위해, 모두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소통하고자 한다.
  그런데 꼭 촛불을 들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해야만, 절박한 심정으로 이야기 해야만 할까? 조금 더 쉽게, 경찰의 무시무시한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요구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없을까? ‘촛불’은 우리가 선택한 최후의 보루다. 가장 ‘점잖게’ 그리고 ‘아름답게’ 집회하는 방법을 찾다가 선택한 마지막 무기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집회’의 주동자를 찾아내 처벌하겠다니, 어쩌면 그렇게 유치한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부디 촛불을 들지 않아도, 여럿이 모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의 요구 사항이 전달되고 이 사회에 반영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 때쯤이면 서울의 풍경도 지금 보다 더 즐겁고 발랄해지지 않을까? 다시 찾은 서울의 달밤이 부디 평화롭고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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