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 동물에 대한 사랑도 가능”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에게서 동물의 향기와 느낌이 풍겨져왔다. 벌써 15년가량 동물과 함께 웃고 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동물이 있는 곳 어디든지 그가 있었다. 동물병원에도 있었고, 대관령 목장에도 있었고, 우유검사원으로도 있었고, 전남대 의대 연구소에도 있었다. 언젠가 최 동문이 황우석 박사에게 인사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황 박사가 “당신은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네요”라고 했단다. 그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온 것은 우치 동물원에 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 민들레 씨 날리는 우치 동물원에 동물들과 ‘함께’ 있다.

기계 보다 사람을, 사람보다는 동물을

  그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다. 소박한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금호패밀리랜드 입구까지 직접 나와 기자를 맞이해준다. 치타의 빠른 속도를 동경하면서도 하마의 게으름 또는 느긋함을 ‘느림의 미학’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혼자 왔으면 자전거 뒤에 태워서 같이 동물원에 가려고 했는데 둘이 왔으니 천천히 걸어가야겠네요” 한다. 자신의 직장인 우치동물원에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단다.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발상으로 반기를 드는 반항심까지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아날로그적 발상이라기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박한 마음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좋단다. “어려서부터 생물을 좋아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울려 노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고… 사실 성격도 조금 내성적인 편이었어요” 이렇다보니, 그가 수의학과를 선택하고 수의학과에 진학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터. 대학에 와서도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친목 동아리가 아닌 ‘애견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 때 전남대 최초로 애견 동호회 주최로 대운동장에서 애견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애견 동호회 회장까지 지낸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내성적이라고 했지만 동물에 관해서는 전혀 내성적이지 않은 듯 하다.

개만도 못하다?

  개만도 못한 인간! 사람들은 아주 어리석거나 못된 짓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부르곤 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낼 정도로 기분 나쁜 말이다. 그러나 최 동문의 생각은 다르다. “웬만한 사람들이 개만도 못할 때가 많으니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고. 무슨 그런 말이 있냐고? 그가 개를 평생 한 주인을 따르고 옆에 있어주는, 충성심이 투철하고 한결같은 ‘수준 높은’ 동물로 보기 때문. 거기에 ‘이랬다, 저랬다’하고 쉽게 마음이 변심하는 ‘요즘사람들’을 보면 “사람보다 개가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개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 비교한다 해도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단다. 우리가 ‘새대가리’라고 부르는 새 중 황새는 평생 짝을 바꾸지 않고 다정하게 춤을 추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뿐만 아니다. 동물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사랑,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어떨 때 보면 인간 그 이상이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사랑이 없고 배려도 없는 이 시대에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거나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는 슬픈 고민을 하곤 한다. 그의 슬픈 고민이 끝나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그에게 동물보다 더 진한 사랑과 배려를 보여 주시라!

동물 세계에서 인간 세계를 읽어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수의사다. 동물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인간 세계’에 유포하고 있기 때문!
무슨 말인고 하면, 그가 우치 동물원에 들어오고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글을 쓰고 싶어서 펜을 든 것은 아니었다. “동물원에 있다 보니 일간지 신문 기자들이 동물들의 겨울나기나 동물들의 생활에 대해 항상 같은 질문들을 해왔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메모하기 시작했죠. 쉽게 말해서, 그냥, 잘 몰라서 쓰기 시작한거에요” 잘 몰라서 쓴 글이 하나, 둘 모이게 됐고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라는 책을 탄생시켰다. 그 이후에도 3권의 책을 냈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는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이다. 동물 세계의 소소한 일상들, 잘 몰랐던 비밀들, 동물과 최 동문 사이에서 일어난 ‘은밀한’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지극히 동물 세계에 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인간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어떻게 동물 세계에서 인간 세계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됐을까?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는 많이 닮아 있어요. 다르다고 할 것이 없죠. 그래서 오랫동안 동물들을 관찰하고 동물들과 대화하면 오히려 동물들에게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시 말해, ‘이런 것은 동물에게서 배워야겠다’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능력 아닌 능력이 생기게 된 것.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소박하지만 때로는 따갑다. 책에서 그는 ‘동물들의 눈에 우리 인간들의 행태는 과연 엽기적이지 않은 것일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또 ‘몸과 몸이 맞닿아 지펴지는 온기, 마음과 마음의 포옹으로 일궈지는 사랑이야말로 춥고 힘든 계절을 견디는 힘이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가 아무리 사람들에게 ‘동물 보다 못하다’고 비판해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 아닐까.
  앞으로도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시나 SF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그에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같은 소설을 기대하고 싶어진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평화를 얻으리라

  그는 개의 마음을 가지고 기린의 모습을 한 사람 같다. 개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동물들을 보살피고 돌보고, 기린처럼 높은 곳에서 멀리 멀리 동물들을 바라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도 개와 기린이란다. 다음 생에 그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기린의 모습으로, 개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하지만 그가 동물로 태어난다면 그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아쉬운 일이다. 동물과 사람의 중개자, 동물들의 대변인이 한 사람 없어지는 거니까. 그는 동물과 인간 모두의 입장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평화를 얻으리라’는 말을 따를 것을 이야기 한다.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숭배하며 살지는 못해도 자연과 가깝게, 정말 ‘자연스럽게’ 살기를 바란다.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테니.
  그는 동물원에 동물이 한 마리 들어올 때마다 때로 가슴 아프다. 우치 동물원은 이제 야생 동물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횡포와 자연의 변화로 야생 동물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자연스러운 것’이 절실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동물들 속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지만 외롭고 쓸쓸한 동물일 테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그는 때로 외롭고, 때로 쓸쓸하지만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의 뒷모습이 더 이상 쓸쓸하고 외롭지 않은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최종욱 동문은…
1987년 우리 대학 수의학과 입학
1994년 수의학과 졸업
~ 1995년 대관령목장 수의사
~ 1997년 해태유업 우유검사원
~ 2001년 여수시청 가축방역관
~ 2002년 전남대 의대 연구소
현 우치 동물원 수의사
어린이동산, kist과학향기, 전라도닷컴 등에 동물칼럼 연재
저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김영사)』,
『우리 동물원으로 놀러오세요(바다)』등이 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