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을 둘러싸고 전남대와 광주가 시끌시끌하다. 이 ‘시끄러움’이 5·18에게 그저 ‘소음’일까, 아니면 ‘팡파레’일까.
  작년부터 우리가 너무 5·18을 ‘써먹지’는 않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5·18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서 5·18이 갖는 ‘민주, 평화, 인권’의 이미지를 팔아먹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전남대가 5·18 진원지라는 ‘스팩’을 ‘전남대의 이력서’에 조심스레 끼워놓고 ‘써먹는’ 사람들이 있다. 전대신문 역시도 ‘5·18’이라는 상품 아닌 상품을 신문에서 팔아먹고 있지는 않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조심스럽다.
  광주민중항쟁은 아무의 손에 의해서, 아무의 기억에 의해, 아무렇게나 굴려져야 하는 장난감이 아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아픈 5·18이 더 아프다고 신음 소리를 낸다. “제대로 기억하고 정신을 아로새겨주지 않을 거면 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병(病)치인’들, 그 날 그 때의 무차별 폭격보다 더 심각한 무차별적 5·18 정신 주입 교육…그래서 5·18은 5월 18일이 두렵다. 그 날만 이리 불러내고, 저리 불러낸다. 5·18 정신이 5월 18일에만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5·18은 내 생활 속에 있고, 내 들숨과 날숨에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 말해야 할 일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 ‘너’를 ‘너’로서 다만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때려서 피가 나고 멍이 들게 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실체 없는 폭력, 소리 없는 폭력은 1980년 그 때 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 ‘먹기 불안하면 먹지 말라’는 논리, ‘쓸 데 없는 짓은 하지 말고 쓸모없는 것은 버리라’는 논리, ‘살아남고 싶으면 경쟁에서 이기라’는 논리가 그 때 휘둘렀던 총·칼 보다 더 무섭다.
  이제, ‘1980년 5월 18일’ 대신 ‘5월 18일’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5월 18일’ 대신 ‘5시 18분’을 이야기 할 때다. 5월 18일에만 5·18을 괴롭히지 말고 5시 18분마다 5·18이 남긴 정신을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때다. 5시 18분의 기억과 실천이 실체 없는 폭력을 물리치는 그 날, 우리에게 5시 18분은 사라지고 5분 18초가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5월 18일 대신 5분 18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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