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에서 8월 초에 걸쳐 열흘 동안 삼복더위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검인정 역사교과서 파문의 기억은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다. 그 교과서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으며 사퇴한 검정위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우리 신문들의 한탕주의에 허탈할 뿐이다.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주무르고 있는 빅3 신문들의 최대 관심사는 김대중 정부를 아작내는 것이다. 잘못한 것을 잘못한 만큼 야단치는 것이야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꼬투리를 찾아 침소봉대하고, 찾다가 마땅한 소재가 없으면 창작을 해서라도 두들겨패는 것이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이 신문들의 기자에게 뉴스 밸류는 오로지 김대중 정부를 공격하는 데 맞춰져 있다.

역사교과서 파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말로 정부가 검정위원 선정과 집필에 개입해서 역사교과서를 정권의 선전도구와 홍보물로 삼았을까? 김영삼 정부를 깎아내리면서 현 정부를 미화했을까? 검정위원들은 정부의 지침을 받아 문제가 있는 교과서를 통과시켜주었을까? 교수신문은 지난 8일 전국의 역사학 교수 75명에게 전화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8월19일자에 실었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과서 내용을 '잘 모르고 있거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만 알고 있다'고 대답한 53명(70.7%)은 정권미화라는 보도에 동의하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 22명(29.3%)은 대부분 언론보도가 왜곡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학 교수들조차도 사안을 잘 모르고 있을수록 언론보도를 그대로 믿는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전공 교수들이 이럴진대, "그런데 내년에 새로 발행될 교과서에 지난 정권을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시기로, 그리고 이번 정권을 발전과 평화의 시기로 기술했다고 한다. 이 교과서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아갈 후배들에게는 교과서를 지은이들의 편향된 시각만을 주입시킴으로써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뿐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한 여고생의 항변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조선일보 8월3일자 독자의견 중에서). 이번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학)는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론보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의 보도만 보면, 마치 교과서 전체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교과서 검정위원에게 비리가 있는 것처럼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검정위원이 공개되고 나니 오히려 언론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각 언론사의 시론 등을 보았을 때 과연 문제가 되고 있는 교과서의 대목을 제대로 읽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쓴 부분만 해도 김영삼 정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만,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처럼 부각됐다.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은 4백여 쪽에 달하는 교과 분량 중 적게는 4줄, 많아야 1~2쪽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역사 교과서에 대한 고민보다는 언론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왜곡한 부분이 강하다."

사정이 이 지경이니 우리가 신문들의 어떤 기사와 칼럼 등을 믿을 수 있겠는가? 김 교수는 "교육부에서 전화 한 통 받은 적도 없고, 검정위원이 누구인지도 최근 문제가 불거진 후에 알았다"고 한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권태억 교수도 교수신문 기고에서 "자신의 입장에 따라 한 두 구절을 서술의 맥락에서 떼어내 문제삼거나, 심사위원을 어용시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일부 언론의 선정성과 근시안적 태도를 개탄"하였다. 다음은 검인정을 통과한 4개 교과서 중 논란이 되었던 금성교과서의 관련 부분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이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후 처음으로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공직자 재산 등록,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보수세력을 기반으로 성립한 정권의 속성상 개혁은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집권 말기에는 세계의 경제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 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자금에 의존해야 하였다.

뒤를 이어 야당 출신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기울이면서, 사회 개혁과 민주화의 추진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일단 외환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사회 계층간의 소득격차 확대와 개혁의 부진 등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동민기자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