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용 교수(철학·논리학) 와 노인들이 ‘노인을 위한 인문 강좌’를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 이는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화두가 되어온 사안이다. 실용학문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 인문학을 위한 자리는 없는 것인가? 인문학의 현 주소를 짚어보고 우리 대학이 인문학 위기 극복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봤다.

위기에 빠진 인문학
  “굶는 과?” “거기 나와서 뭐해?” 인문학도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질문이다. 이렇듯 인문학의 위기는 이러한 우리들의 인식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006년 9월에는 고려대 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에 이어 전국 인문대학장들도 인문학 위기에 대한 반성과 지원 호소의 목소리를 냈던 바 있다. 대대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목청껏 외치고 노력해보지만 여전히 ‘인문학 바람’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국의 대학들이 인문학 관련 비인기학과를 통폐합시키는 등 인문학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H대는 전체 학생 정원의 10%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2학기부터 비인기학과인 독문과를 통폐합해 신입생 정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부분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는 말하지만 ‘인문학은 먹고 살기 힘든 학문’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인문대 학생회장 김호준 군(독문·3)은 “대학이 취업을 위해 거쳐야하는 하나의 관문이라는 인식 때문에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는 더욱 소외되고 있다”며 “이는 학문과 현실의 괴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속으로 파고 든 인문학

  “우리나라 첫 우주인 이소연 씨가 광주 출신이죠? 그럼 우주인답다는 건 무엇일까요?” “일단은 건강해야 하고, 과학적 지식이 풍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적 수준이 높거나 어려운 용어가 오가는 시간은 아니지만 그 어느 수업보다 화기애애하다. 이는 지난 2월부터 매주 수요일 청년 글방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인을 위한 인문강좌’의 수업 풍경이다. 우리 대학 철학연구센터에서는 3년 전부터 ‘청소년 철학교실’ 등을 꾸준히 운영해 왔다. 올해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인문강좌’와 ‘인문학, 전문계 고등학생을 찾아가다’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문화 가정과 노인, 전문계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전하고 있다.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인문강좌’의 ‘노인을 위한 인문 강좌’ 청강생 오순덕 씨는 “학문에 눈은 어둡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한 글자라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돼 좋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은 2006년부터 매년 10월 한글날을 전후로 한 일주일을 ‘인문주간’으로 정례화 했다. 이에 2007년부터는 우리 대학을 비롯한 전국 14개 대학과 단체가 ‘인문주간’에 학술제, 문화체험행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어 우리 대학 역시 올해 4월부터 매주 수요일 ‘수요일의 인문향연’이라는 역사, 문학, 철학 등의 인문강좌를 마련해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인문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올해 뿐 아니라 앞으로 매년 시행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유미 양(철학·2)은 “우리 대학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사람들의 반응도 꽤 좋아 보이고 시간을 내 앞으로 매주 와서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 대학에서 마련하고 있는 인문학을 위한 자리가 한시적인 것이 아닌 인문학이 삶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지속돼, 좀처럼 불지 않았던 인문학 바람이 이는 데 일조 할 것으로 보인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학문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 얼 쇼리스는 그의 책 ‘희망의 인문학’에서 노숙자, 전과자, 마약 복용자, 최하층 빈민 등 사회적 소외계층의 자활을 위한 ‘클레멘트 코스’라는 인문학 강좌를 소개했다.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자신의 삶과 세상을 깊이 성찰하고 다시 삶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난 2005년 한국에서도 노숙자 다시 서기 지원센터와 성공회대가 ‘성프란시스 인문학강좌’라는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를 열었다. 이에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 이선근 씨는 “철학, 문학, 역사 등 1년 2학기제 6과목 15강의 강좌를 기본으로 현장학습 및 문화체험을 통한 인문교양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 과정을 통해 노숙자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같이 인문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현실과 유리된 학문이 아닌 삶의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데 핵심이 되는 학문이다. 박구용 철학연구센터 소장(철학· 법철학)은 “인문학은 유용성을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지만 유용한 학문이다”며 “인문학의 유용성이라 함은 곧 소통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유용한 학문인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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